한국의 식물 깊이 알기
공진화를 알면 보이는 것들
으름큰나방의 애벌레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공진화해 왔다.
생물 간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크게 경쟁, 공생, 포식, 기생 정도로 나뉜다.
이 관계를 잘 이해하면 식물이 더 잘 보이고, 곤충의 애벌레가 보이며, 별빛 젖은 우주가 보인다.
35억 년 전,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이후로 모든 생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 왔다.
그것을 공진화(coevolution)라고 한다.
이 용어가 등장한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진화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공진화가 아니고서는 생태계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은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결코 혼자서는 진화할 수 없으며 상호작용(interation)의 관계 속에서 함께 진화한다는 것이 공진화 이론의 요지다.
생물 간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크게 경쟁, 공생, 포식, 기생 정도로 나뉜다.
경쟁(competition)은 둘 이상의 개체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종 간에도 일어나고 타종 간에도 일어난다.
제한된 영역과 먹이와 짝짓기 상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특히 동종의 개체들은 같은 환경에 놓이고 같은 먹이를 먹으며 같은 종의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기에 종간 경쟁보다 더 치열한 종내 경쟁을 펼친다.
종내 경쟁의 심화는 좀 더 진화한 후손의 생산을 유도하고, 종국에 가서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생물 진화의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종간 경쟁보다 종내 경쟁이라고 한다.
종내 경쟁은 주로 수컷들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수컷의 성비가 암컷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공생(mutualism)은 경쟁, 포식, 기생과 달리 모두가 이득을 보는 관계다.
공생을 가장 잘하는 생물로 식물을 꼽는다.
대표적인 예가 꽃 피는 식물이 곤충을 이용해 수분(受粉)하는 일이다.
누구도 계약서에 사인(sign)한 적 없는 밀약이기에 철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다.
‘공생 사업’으로 표현되는 이 위대한 비즈니스는 수분매개자인 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의 다양화,
수분매개 대가(代價)인 보상 체계의 발달(비보상 포함), 그리고 유효한 수분매개자를 선점 또는 독점하기 위한 식물 간의 경쟁을 촉발한다.
그리하여 꽃 구조의 다양화는 물론이고 화서의 발달 및 성 체제의 진화로 이어지며 종 분화라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식물과 곤충의 관계가 공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곤충이 특정한 식물을 먹이로 삼거나, 식물 쪽에서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predation)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곤충이 특정한 식물을 먹이로 삼는 예는 아주 많다.
광릉숲에 날아드는 곤충만 살펴봐도 그렇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의 잎에만 알을 낳는다.
간혹 쥐방울덩굴에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와 다르게 생긴 벌레가 돌아다닌다.
그것은 사향제비나비의 애벌레다.
사향제비나비는 등칡을 포함한 쥐방울덩굴속 식물의 잎에 알을 낳는다.
쥐방울덩굴과 등칡 모두 유독성 식물이지만 면역성을 길러 먹이 식물로 삼은 그들은
그 독을 체내에 축적해 어지간한 포식자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이점까지 누린다.
남들이 못 먹는 식물을 먹는다면 그 식물을 독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조상 덕에 꼬리명주나비의 후손은 쥐방울덩굴만 있으면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편식 습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해당 특정 식물이 사라지면 알 낳을 곳도, 애벌레의 먹이 식물도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쥐방울덩굴이 멸종하면 공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단점까지 꼬리명주나비의 조상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쥐방울덩굴에만 알을 낳는 꼬리명주나비와 비교해 쥐방울덩굴과 등칡에도 알을 낳는 사향제비나비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
그러므로 특정 종보다 특정 속이나 특정 과의 식물을 먹이로 삼는 전략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식물을 먹이로 삼을수록 독점하기 어려워지므로 다른 종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독점할 것이냐, 경쟁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제비나비류를 닮았지만, 과가 다른 두줄제비나비붙이는 느릅나무과의 참느릅나무나 비술나무의 잎에 알을 낳는다.
애벌레는 하얀 밀랍 물질로 덮여 있어서 약간 징그럽다.
다 자라면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그런데 이 느릅나무과 나무의 잎에는 은판나비도 알을 낳으므로 당연히 종간 경쟁이 일어난다.
으름큰나방(으름밤나방)은 으름덩굴과 식물인 으름덩굴이나 멀꿀의 잎에 알을 낳는다.
으름덩굴과 식물을 이용하는 다른 곤충은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으름큰나방이 으름덩굴을 독점하는 것이 된다.
으름덩굴은 좀처럼 멸종하기 어려워 보이므로 으름덩굴을 먹이 식물로 삼은 으름큰나방의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왕물결나방은 물푸레나무(Oleaceae)과 식물의 잎에 알을 낳는다.
물푸레나무과 식물 중에서도 유독 쥐똥나무와 물푸레나무를 선호한다.
과만 같을 뿐 쥐똥나무속(Ligustrum)과 물푸레나무속(Fraxinus)으로 속이 다른 두 나무는 같은 속 내에 여러 유사종이 있다.
그런데도 왕물결나방이 쥐똥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잎을 골라 알을 낳는 점이 특이하다.
수수꽃다리속(Syringa) 재배품종에서도 애벌레가 자라는 것으로 보아 선호하는 수종은 있되
물푸레나무과의 올리브족(Oleeae)에 속하는 식물이면 번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애벌레는 네 개의 긴 뿔이 달린 험상궂은 모습이며 주변에서 소음이 들리면 머리를 마구 흔드는 헤드뱅잉을 한다.
몇 번의 탈피를 마치면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어야 하므로 걸리적거리는 뿔은 미리 사라진다.
이 무렵 왕물결나방 애벌레의 몸에 기생파리류가 알을 낳기도 한다.
몸에 보이는 여러 개의 흰점이 파리류의 알이다.
이런 기생(parasitism)은 고도로 진화한 전략이다.
번데기가 되기 전에 파리류에게 기생 당한 왕물결나방의 애벌레(몸의 흰 점이 파리류의 알이다)
반대로, 식물 쪽에서 곤충의 고기 맛을 보기도 한다.
통발, 참통발, 들통발은 뿌리에 달린 벌레잡이주머니로 물속의 작은 벌레를 잡는다.
이삭귀개, 땅귀개, 자주땅귀개는 뿌리에 달린 벌레잡이주머니로 진흙 속의 작은 벌레를 잡는다.
남한에는 분포하지 않는 벌레잡이제비꽃은 카펫처럼 펼친 잎의 표면을 지나가는 작은 곤충을 샘털로 붙든 후 그대로 녹여 소화한다.
그 외에 끈끈이주걱이나 끈끈이귀개는 잎에 달린 끈끈한 샘털로 비교적 큰 벌레를 잡는다.
이렇듯 생물 간에 벌어지는 포식 관계의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숱한 상호작용 속에서 축적한 데이터가 유전자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추종자들은 유전자야말로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하지만 유전자가 ‘영원불변’의 존재는 절대 아니므로
가변성을 지닌 존재가 어째서 불멸할 수 있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35억 년 동안 지구상에 나타났던 생물종의 99%는 멸종하고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물은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다른 후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결국 새로운 종이 출현하면, 원래 있던 생물종들과 새로운 상호작용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의 멸종을 막고 보존하는 일에 무던히도 애를 쓴다.
100년도 못 살기 때문이다.
사람이 1억 년 정도 사는 존재였다면 종을 대하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기에 바로 눈앞의 것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인간이 무슨 재주로 이 우주의 광음(光陰)을 헤아릴 수 있을까?
빛의 속도로 머나먼 우주 공간을 달려왔을지라도 지금은 소멸하고 없을지도 모를 별빛이 산 사람의 눈에 와서 젖는 것도 알고 보면 참 절묘한 순간이다.
참고자료
- 최재천. 2004. 다윈 지능. ㈜사이언스북스.
글쓴이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전문위원 이동혁
광릉숲보전센터
임업연구사 조용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