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외로움은 병은 아니지만, 질병의 중요한 발생 요인이 되는 심각한 병적 상태입니다. 외로움은 그간 여러 병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징후와 증상으로 지목되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8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외로움부와 그 장관을 신설한다는 뉴스로 함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외로움 문제에서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은 영국의 고(故) 조 콕스 의원입니다. 영국의 노동당 헨리 조 콕스 하원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외로움 협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의 여러 이슈들을 모으고 외로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기울여 오던 중 안타깝게도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하는 괴한에 의해 살해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져, 작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동료 의원들이 조 콕스 의원의 활동을 기리는 애도와 함께 그녀가 주력해온 외로움 이슈를 본격적으로 계승하여 연구한 결과로 2018년 '연결된 사회: 외로움 대처 전략(A connected society: a strategy for tackling loneliness)' 라는 보고서가 나오고 이를 영국 사회에 발표하게 됩니다.1) 해당 칼럼 보러가기
이 보고서에는 외로움은 사회적 감염병 중 하나이며, 외로움은 우리의 건강과 사회생활을 파괴하는 독립적인 요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2018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보수당 테레사 메이는 이 보고서의 여러 근거를 지지하고 그 필요성에 동감하여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하게 됩니다. 외로움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경제적 부담, 건강상의 불행이 이 보고서, 장관의 임명 등으로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영국은 장관 임명에 이어 정부 부처중 관련된 9개 정부부처가 협력해 외로움 해소 전략을 발표하고, 해마다 예산을 배정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2020년엔 2천만 파운드가 넘는 재정으로 외로움 퇴치를 위한 국가 사업을 전개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정부의 사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외로움 퇴치 전략에는 기업, 시민단체, 지역사회 공동체가 함께 하는 사회적 운동으로도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로움의 영향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하루 종일의 외로움은 담배 15개피 흡연 효과와 같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주는 스트레스 영향을 연구한 대표적 결과입니다. 외로움은 암환자의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쳐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투병생활하는 암환자는 더 오래 생존하는 반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암환자는 생명이 더 단축되는 것으로 보고 되었습니다.2) 해당 칼럼 보러가기
이 밖에도 외로울수록 우울증이 더 많이 생기고, 자살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외로우면 알코올 의존도도 높아지며, 공격 행동도 증가하고 사회불안도도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로움은 치매를 진행시키고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기도 합니다. 외로움이 미치는 영향은 정서와 인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뇌졸중의 반복도 외로움과 연관이 깊고, 비만도 또한 외로움이 중요한 변수이며, 혈압의 조절에도 외로움은 크게 영향을 미쳐, 외로운 사람들 중에 고혈압 환자가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우리 신체의 면역력도 약화시켜 염증 반응이 더 증가하고 쉽게 감염되며 백혈구의 기능도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외로움을 느끼고 지내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다는 보고도 수집되고 있습니다.3) 해당 칼럼 보러가기
외로움은 우리의 건강 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결국 수명에도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소임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이제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외로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서 또 한편으로 연구되고 알려지고 있는 것은 외로움의 사회경제적 영향입니다. 2019년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geing, NIA)는 은퇴한 사람들이 외로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매년 70억 달러 (7조원 이상)에 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400만명 이상의 회원으로 조직된 영국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조직, 생활협동조합(Co-ops)은 자신들의 보고서에서 외로움으로 인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매년 25억 파운드, 약 30억 달러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비용들이 외로움으로 인한 부담으로 발생하는지를 조금 더 자세한 명세서를 영국 자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이 생활협동조합의 자료에 의하면 외로움으로 인한 병가와 관련 의료비용으로 2000만 파운드, 외로움 때문에 병을 앓는 이들을 간호하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비용이 2억2000만 파운드, 이와 관련한 생산성 하락으로 6억6500만 파운드, 그리고 이와 관련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직원들과 관련된 간접 비용으로 16억2000만 파운드라고 합니다.4) 해당 칼럼 보러가기
이미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는 외로움이 주는 건강, 사회 효과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을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호주, 덴마크 등의 여러 나라에서 아주 구체적인 외로움 대항 사회 정책을 펼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외로움에 관한 여러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어떨까요?
우리 나라에서의 여러 조사에서 10명 중 1명은 아주 외롭고, 6명은 외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이 모든 지방자치체에서 큰 이슈가 되고 다양한 연구와 정책이 준비되고 있습니다.5) 해당 칼럼 보러가기
한편으로 인구 구조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950만 대도시 서울의 경우는 1인 가구가 현재 30%에 육박하는 상태이고 전국적으로도 30%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20년 이내에 가장 비율이 높아질 가구 형태는 1인 가구라는 전망도 나와 있습니다.6) 해당 칼럼 보러가기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으로 충격이 되는 이슈는 지난 몇 년간 더 증가되고 있는 고독사 문제와 더불어 자살의 증가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초연결 사회가 될 줄 알았던 우리 사회가 지금 초단절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들입니다. OECD에서의 조사에서도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청하지 못하는 사회라는 결과가 여러 번 보고 되었는데, 이런 외로움이 중장년 이상, 노인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50대 중장년의 고독사가 제일 많고 70세 이상의 노인에서 외로움 증가가 현저하지만, 20대 청년들의 외로움도 아주 중대하며 증가율 자체는 가장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50대 다음으로 높은 고독사가 20대 청년들이고, 더 우려하는 것은 코로나 시절의 사회적 고립과 함께 자살율이 급증한 세대가 20대 청년들이라는 사실입니다.7) 해당 칼럼 보러가기
6) 물론 모든 1인 가구가 외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가구에 비해 외로움을 호소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과 관련된 사회병리현상 중 우리 나라에서 더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상태, 그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는 ‘고독생’입니다. 고독생은 아주 힘들고 외로운 생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여집니다. 우리 생애에서의 가장 큰 비극을 ‘젊어서는 고독생, 늙어서는 고독사’이다 라고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절망적 인식의 배경에는 초경쟁 사회에서의 도태에 대한 불안이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실제로 따돌림을 포함한 집단에서의 소외나 배제 경험을 한 청년들의 비율이 우리의 상식보다는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외로움과 연관된 또다른 사회병리로 집안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는 스스로 외롭다고 밝히는 분들도 있고, 자기세계 속에 빠져 지내며 외로움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사는 시간이 늘어나는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 중 하나라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늘어나는 고독생과 은둔형 외톨이 등으로 인해서도 외로움 예방 및 개입에 대한 정책이 더 시급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콕스 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외로움을 예방하고 개입하기 위해 외로움에 대한 인식개선이 중요하다고 제안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다양한 리더들이 외로움을 한 번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의 하나에서 지속적인 외로움은 질병을 유발하고 인생의 큰 피해를 가져오는, 마치 암을 유발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요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알리기 위한 외로움 측정, 외로움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이를 밝히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따라 영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와 도시에서 외로움 측정이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여러 연구기관, 언론기관, 지자체 등에서 외로움 연구를 시도하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 개선과 함께 다양한 사회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 캠페인, 주거와 경제활동에서의 지원, 그리고 공동체 형성 지원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외로움 속에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을 불러내어 공동체를 재형성하고 조직하는 것은 어느 사회나 현재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고 있습니다. 연령에 따라, 성별에 따라, 기호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마음을 열고 외로움을 나누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외로움 타파 사업의 어려운 점입니다. 외로움을 달래는 건강한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기에 이에 대한 섬세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50대에게 커피숍으로 나와서 오랜 시간 대화를 하자는 제안은 아주 불편한 초대라고 합니다. 50대 남성들의 다수가 낮시간에 커피숍에서 오래 이야기하면 실업자라는 인상, 할 일 없는 인간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인식으로 인해 초대에 응하기 싫다고 합니다. 외로운 20대 여성들의 모임을 중년 모임들이 많이 모이는 여성관련 센터에서 개최하니, 참여도 자체가 낮아서 모임이 구성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여성 관련 센터는 중년들이 모이는 장소라 엄마같은 사람들과 만나기 싫어서 모임 장소를 바꿔야만 했다고 합니다.
외로움을 지닌 세대나 그룹의 특성을 잘 알고 그에 맞추어 세심하게 접근해서 소그룹의 소속감을 갖도록 하고 서로 돌보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경청하고 상담하고 배려하고 제안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사회적 어려움이 줄어들 수 있는 새로운 사회공식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조 콕스 의원이 이 사업의 슬로건으로 사용하던 문구 중 하나가 “외로움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누구나 외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로 말했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연결되어야함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적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그 분은 강조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이 연결의 고리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책이고 예방사업이 될 것입니다. 바쁜 한국 사회에서는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외로운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사소한 실천, 섬세한 기획,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시급한 상황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