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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마주한 청년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writing.이기연
(한국보건복지인재원 교수)

  • “길고 위험이 넘치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시간을 살아가야 할...”
    - 촐라체(박범신)
  •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 청춘의 문장들(김연수)
  • ‘청년’과 ‘청춘’

    짧아진 봄, 다른 계절의 사이이자 준비 혹은 전환하는 간절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단지 “날씨에 관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청년’과 ‘청춘’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문학에서 청년과 청춘의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걸음으로 걸어가야 할 위험하고도 긴 시간 혹은 짧지만 오래도록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무런 도움 없이 홀로 걷는 길은 외롭고 길며, 차별과 혐오는 이 길을 더욱 위태롭게 합니다. 청년은 ‘청년’으로 태어나지 않으며, 청년의 삶을 종횡으로 관통하는 생애 과정 경험과 재난적 상황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외로움이란 단어는 흔히 ‘청년의 단어’가 아닌 ‘노인의 단어’로,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적 감정으로 축소되어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외로움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 느끼는, 흔히 지극히 개인적 감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외로움과 마주한 청년의 삶을 개인 책임화하거나 단순히 심리적인 상태로 축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로움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 제도와 사회 전체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외로움은 나이를 넘어서는 단어가 되며, 경제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참여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청년의 외로움은 예외적인 것이 아닌, 그 어떤 세대보다도 외로움과 전격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 코로나19 ‘격리’라는 이름으로 소외와 배제를 공식화

    현대사회에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원인과 조건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놀이터나 학교, 나아가 소셜미디어에서 따돌림을 당한 경험, 가족이나 소속된 공동체가 붕괴하여 비빌 언덕이 없는 다양한 삶의 상황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라는 저서를 통해 스마트폰이나 도시의 비대면 시스템, 다양한 방식의 감시 시스템 하에서 일하는, 감시노동에 갇혀 살아가면서 소통 본능이 퇴화하고 소통 기술을 학습하지 못한 채 ‘외로운 생쥐’처럼 공격적으로 변하고 사회적으로는 소외와 배제, 양극화, 정치적 극단주의로 몰아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혹은 ‘격리’라는 이름으로 소외와 배제를 공식화함으로써 ‘고립의 시대’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19로 인해 합법화되거나 사회적으로 강요된 고립이라는 경험이 인간의 정신건강에 장기적으로 드리울 그늘에 대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립의 경험은 정신건강만이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연구에서 고립 경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은 몸의 상태가 되어 쉽게 지치고 지나친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위험에 대한 과각성 상태가 유지되어 진정하라는 해제 스위치가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이렇듯 신체 건강과 정신건강, 나아가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심화시키는 외로움이라는 삶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요? 물론 개인의 노력과 개인의 자기돌봄만을 통해 각자도생하도록 하는 것은 다층적이고 거시적인 외로움의 영향요인을 생각한다면 미흡하고 또 적절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심과 인정받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상업화한 SNS의 폐해를 고스란히 디지털 디톡스라는 이름으로 SNS 활동을 줄이거나 끊는 등 개인의 노력과 자중으로 피해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외로움과 고립을 심리적이고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고립 사회’라는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4차 혁명 혹은 디지털 전환이 추구하는 사회의 가능성과 함께 단순히 사라지는 직업에 대한 염려만이 아니라 그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관심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즉 사람 사이에서의 피곤함을 단순히 ‘이상한’ 주변 사람이나 ‘이상한’ 조직문화에만 혐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시스템으로서의 디지털 사회의 영향임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가까운 이웃을 미워할 일이 아니라 그 이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환경적 맥락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불 밖은 위험해”서 디지털 고치에 틀어박히게 되는 개개인의 총합이 결국 어떤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경각심에서 출발한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관심과 시도가 창의적으로 이루어질 때입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그리하여 가장 전면에서 외로움과 마주한 청년이 청년의 시각으로, 청년의 목소리로, 청년의 이야기로 청년의 외로움을 직면하고 풀어가기 위한 창의적인 실험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이 가능케 할 청년의 참여와 노력을 지원하는 다양한 주체가 필요합니다. 특히 지역사회의 정신건강 인프라 역시 청년을 위한 서비스로서만이 아닌, 청년에 의한 서비스를 통해 ‘청년의 서비스’로 가닿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