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섭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우울증은 남성의 5~10%, 여성 10~25% 정도로 매우 흔한 병으로, 이로 인하여 대인관계, 직업, 학업 등 일상의 영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특히 사회성, 감정, 인지능력 등이 빠르게 발달하는 청소년기와 10대와 20대 청년기의 우울증은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우울증도 적지는 않지만, 호르몬의 변화와 뇌의 발달, 스트레스 증가 등에 따라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우울증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우울증 발병의 이유는 간단하지 않아서 유전적 요인이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미치지만, 청년기의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이 우울증 발병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청년들은 때때로 심한 압박감을 받습니다. 청년들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인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받는데, 만약 스스로 이런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끼면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저하되고 우울증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많은 청년들은 가족 내 갈등에 의해서도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의 위험성이 증가될 수 있으며, 이 중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폭력 등은 우울증의 위험성을 증가시킵니다. 청년이 자존감에 손상을 받으면 대인관계도 어려워지고, 마음을 터놓을 만한 친밀한 관계를 만들거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아 청소년기에 경험할 수 있는 따돌림도 우울증과 관련성이 높습니다. 우울증은 특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 거의 두 배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런 성별 차이는 청소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지속되기 때문에, 성적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사회적, 문화적 스트레스 요인 또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청년기의 우울증은 이후 재발의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겪은 경우 50%의 환자는 재발을 경험하는데, 이는 성인기에 우울증이 생긴 경우보다 3배 높은 위험도입니다. 청년기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는 우울증 외에도 섭식장애, 자살/자해 행동,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 문제가 동반될 수 있고 불안장애, 비만, 심혈관계 질환 등 다른 질환이 동반될 위험성도 높습니다. 개인적 사회적 변화가 많고 이에 따른 적응이 중요한 청년기에 우울증을 겪을 경우, 학업적 성취나 취업, 경제적 수입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대인관계를 유지하거나 결혼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기 우울증은 빨리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나 도움이 필요하지만, 간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의 진단기준은 우울한 기분 혹은 예민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감소, 식욕과 체중의 변화, 불면이나 과수면, 초조나 늘어짐, 에너지가 감소하고 피곤함, 죄책감이나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 집중력 저하나 사소한 일도 결정하기 어려움,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청년기 우울증에서는 이러한 증상 중에서 체중이나 식욕의 변화, 수면의 변화, 에너지가 없고 피곤한 느낌 등이 흔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의 증상 중에 어떤 것들은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호전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 반응과 우울증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청년기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의 성취를 요구받는 시기입니다. 청년기의 불확실한 미래와 좌절감, 직업을 찾거나 이직을 하고, 연애를 하거나 헤어지기도 하고, 결혼을 하거나 하지 못하는 등 인생에서 중요한 갈등과 변화에 대한 적응이 따르고,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하고 변화에 직면해야 하는 불안감이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런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단기간의 우울감이나 의욕저하, 수면이나 식욕의 변화 등 우울증과 유사한 경험을 하는 것이 반드시 병적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나 우울반응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정적 반응이 많다면 전문적 도움을 받아야 더 큰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고, 더 빨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고통과 일상생활의 어려운 정도가 심하고 기간이 긴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합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이나 실패를 경험한 후 우울한 기분이나 자책감, 불면 등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기간이 짧고, 학교나 직장에 잘 다니며 어느 정도의 기간 후 원래 모습을 회복한다면 우울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증상으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과 단절되어 우울해지거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자책하고, 우울해진다면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단기간이라도 심각한 자살 사고가 있다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울증은 단기간에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며 우울증상으로 인해 다른 문제가 생기고 더욱 우울해지는 경과를 밟습니다.
우울하거나 불행하고, 모든 것이 귀찮고 혼자 견디기 어렵다면 주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지지가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현재의 기분, 감정에 대해 표현할 수 있게 잘 듣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해와 경청이며,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비판하고,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무시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정신 차려라”, “떨쳐버려라”와 같은 말은 오히려 환자의 자존감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전문적 평가와 치료를 포함한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데,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하고, 짧더라도 외출이나 산책을 하여 신체적 리듬과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은 그 사람의 잘못으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유전적 요인, 어린 시절의 경험, 주변 환경, 경험하고 있는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 경험할 수 있는 병입니다. 왜 나에게 우울증이 생겼을까와 같은 우울증의 원인에 집착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늘은 우울감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 어떻게 덜 우울하고 덜 힘들게 살아갈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