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 -
처음 심리상담을 받았던 날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상담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매일 마주보는 선생님께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점심시간동안 나의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상담을 받게된 계기는 교내 또래상담부 친구들이 심리상담을 받을만한 학생으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지?’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해보이나?’라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추천대상에 올라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교내에서 나는 소위 ‘못생긴 아이’로 불렸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남자아이들은 나를 피했고 눈을 가리며 눈이 썩는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소위 일진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타깃이 된 것이였다. 내 사물함에 서로의 물건을 넣어두며 손으로 만지면 손이 오염된다고 교실 뒤편에 있는 베드민턴 채로 나의 사물함을
뒤적거리며 자신들의 물건을 꺼낸 적도 많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외모로 놀림을 많이 받아왔다. 중학생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바뀐 것은 나를 비하하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것 뿐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매일 밤 울다 지쳐 잠에 들었고 도로에 차가 달리는걸 보면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말 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시고 밥상을 엎었고 욕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거울을 던지거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 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그렇게 하나 둘 늘어났다. 엄마에게는 늘 행복한 딸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었고 결국 부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키울거면, 이렇게 낳을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좋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엄마에게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말했다. 다행히도 우리집은 차상위계층이라 바우처로 심리상담을 선택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들여다보게 된 첫 출발점이었다.
상담센터에 가기 전 나의 상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며 보건소 정신건강센터에서 심리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긴장되거나 두려운 마음보다
정신건강센터에 왔다는 사실로 내가 꼭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을 받을 때도 ‘나의 마음을 잘 이야기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검사를 하고 선생님과 짧은 상담을 나눴다. 나의 걱정과 달리 나는 눈물을 쏟으며 나의 이야기를 했다. 물론 모두 진실만을
말한 것은 아니다. 착한 아이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속마음을 숨기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속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답답한 것이
풀리는 듯 했다.
처음 상담을 받을 때는 나의 진짜 고민을 쉽게 말하지 못했다. 숨기고, 감추기만 했다. 그래서 상담의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할 때 쯤 선생님께 나의
장점을 최대한 많이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다. 너무 막막한 과제였다.
혐오스럽기만 한 내 모습에서 과연 장점이랄게 있을지, 생각해도 하나도 없다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선생님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써보라고 했다. 나는 일주일동안 혼자서 깊이 고민해봤다. 내면적인 것이든, 외면적인 것이든 아무거나 하나씩 써보기로 했다. 공부를 잘
하지도,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나에게 장점이란게 있을까 싶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국어를 잘한다를 첫 번째로 적었다. 그 뒤로 2번, 3번, 4번 하나씩 번호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웃을 때 애교살이 생긴다, 보폭이 좁아서 산책로를 걸을 때 주위를 둘러보며 갈 수 있다, 손이 커서 공기놀이를 잘한다 등 아주 작은
장점이라도 하나 둘 써내려갔다. 백지에서 시작한 종이는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갔고 ‘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외모를 혐오했던 나에게 ‘웃으면 애교살이 보인다’와 아주 사소하지만 ‘손이크다’라는 장점을 쓰면서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흑백논리로, 평면적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는 유언장을 쓰는 일을 했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죽고싶다는 생각은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유언장을 쓰면서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보다는 지금
죽는다면 남길게 없는 나의 삶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큰 성취도 없이 끝나버린다는 허무함만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인생 그래프를 그렸다. 나의 과거부터
미래까지 큰 사건과 감정들을 중심으로 그래프를 채워나갔다. 나는 미래에 하고싶은 일들을 하나씩 그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렇게 하고싶은게 많은데
하나도 못 하고 인생이 끝나면 너무 아쉽지 않겠니?”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삶의 목표가 생겼다. 그래프를 채운 무수히 많은 나의 미래들이 앞으로 내가
이뤄낼 성취들이 기다려졌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어려운 나를 위해 선생님은 대화보다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며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어느 순간 나는 죽고싶다는
생각도 나를 혐오하는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나를 지지해주던 상담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그리고 현재는 심리학과에 진학해 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 가끔 우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아마 대단하다고 말할 것이다. 대학도 다니고 꿈도
있고 감정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멋있다고 할 것이다. 30살의 나도 지금의 내가 동경할 수 있을만큼 멋있는 어른이 되자라는 믿음으로 또 그
믿음에 보답하리라는 다짐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늘 빛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빛이었던 상담 경험처럼 나도 어둠 속에서 묵묵히 빛을
밝혀주는 누군가의 달빛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