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은
(제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과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따서 이 시대를 뷰카(VUCA)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워진 세대가 바로 청년들이고, 그래서 이 시대 청년들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고용 시장의 경쟁, 일자리 시장의 변동성 등 사회진출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힘들고, 주변에서의 사회적 기대와 압박, 가혹한 평가 속에서 불안과 혼란을 느낍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가장 직격타를 입은 세대가 청년 세대일 수 있습니다. 학업 및 구직 문제, 주거 문제, 여가 활동의 축소 등으로 청년의 우울이 보다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격리 등은 청년들의 일상과 소통 방식을 크게 제한하였고, 사회적 연결과 교류의 부족은 불안, 외로움, 무기력 등을 가져왔습니다.
2022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참사가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지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함께 갔던 친구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참사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이 SNS를 통해 무방비하게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고 그 중 상당수가 청년들이었습니다.
학교폭력, 데이트폭력의 피해 또한 10대, 20대의 청년 세대에서 주로 발생하는 트라우마의 형태입니다. 폭력의 피해는 경험하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고 오랜 시간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현재를 살고 있어도 마치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당시의 감각과 감정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피해자 상당수가 우울, 불안, 자살사고와 같은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경험하고, 부정적인 자아상, 대인관계 단절이나 부적응을 초래하게 됩니다. 또, 가해자 또는 사회에 대한 분노, 모욕감, 억울함 등으로 인해 공격성, 복수심이 일어나 괴로워합니다.
불안한 시대, 안전하지 않은 환경, 여러 형태의 폭력에의 노출, 감염병, 천재지변, 대형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 등 청년 세대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어원은 ‘뚫다’ ‘뚫리다’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τραῦμα(트라우마)’ 입니다. 구멍이 뚫릴 만큼의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말하며,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는 트라우마가 뇌 영역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 폭력, 학대와 같은 반복적인 트라우마 경험을 하게 되면 보다 심각한 형태로 뇌의 신경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로 인해 트라우마 기억은 선명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재경험 되어 현재 상황에 대한 두려움, 압도되는 것에 대한 공포, 저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위험에 대한 과도한 경계와 과민성, 집중 곤란 및 수면 문제 등 과각성 증상을 보이고, 트라우마의 원인이나 결과에 대해 자신이나 타인을 비난하고 두려움, 공포, 분노, 죄책감 및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지속됩니다. 이처럼 트라우마 이후 오랜 기간, 심각한 수준의 불안, 공포반응을 경험하고 신체와 정신에 기능장애가 오는 질환이 바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입니다.
비슷하게는 외상후울분장애의 개념이 있습니다.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이후에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 분개, 절망, 좌절, 무력감 등을 빈번히 경험하는 부적응의 한 형태입니다. 앞서 언급한 뷰카 시대를 사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울분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울분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 분노가 생기고 복수심이 들지만, 반격할 여지가 없어 무기력해지고 뭔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굴욕감이 결합되며 생기는 감정으로 정의됩니다. 사회적으로 거절당했다는 경험은 울분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특히 자신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렵게 버티며 경험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 당하면 울분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 세대가 흔히 경험하는 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기득권층의 갑질,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따돌림으로 인해 외상후울분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청년 세대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트라우마의 회복은 ‘치료’라는 말보다는 ‘치유’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어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뎌내고 계속 살아가는 과정에서 회복과 또 다른 성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치유 과정을 위한 첫번째 단계는 ‘안전과 안정’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청년들은 자신의 신체 안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고, 감정과 사고는 통제 밖에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먼저 감정과 생리적 반응이 안정되어야 즉 안정화가 되어야 잘 판단하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정화는 트라우마로 인한 여러 증상들에 대해 교육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전과 다른 혼란스러운 상태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위험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 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복식호흡훈련, 이완 기법, 안전한 장소를 떠올리는 심상화 기법 등 스스로를 안정화시키는 방법들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그들이 어려움을 표현하고 터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심리적 위기 상황을 해결하고 안전하고 지지 받을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통해 몸과 마음을 안정화시키고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트라우마의 치유 과정에는 사회적 지지와 공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바로 연결감의 회복입니다. 트라우마의 최종 영향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사회적 지지입니다. 청년들이 트라우마에 갇혀 고립되지 않도록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자칫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고 개인의 노력과 책임만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개인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청년 개인의 트라우마는 미래의 사회적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적 트라우마로 인해 개인도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사회구조적으로 소외되고 차별 받아온 청년 세대에 대한 공감과 그들의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청년들의 고통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감할 기회를 늘리는 것은 청년 세대의 개인적 치유과정을 도울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새로운 미래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영감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