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진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근 많은 언론에서 한국의 마약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중 20대인 초기 성인기, 심지어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마약류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동시에 마약류와 관련된 많은 관련 보도 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내 옆에 직면한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약중독하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일반인들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비춰지는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 한국에서 마약류 사용은 소위 ‘깡패’, ‘조폭’ 같은 일부 부도덕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비도덕적이고 불건전한 행동으로 치부하며, 마약 사용을 사회적 금기로 인식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마약류 사용에 대해 철저하게 사법주의적 접근만을 해온 우리 사회의 대처에 기인한 것이며, 적어도 지난 시간 일반인들의 마약류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을 통제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비교적 오랜 기간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 접근은 애석하게도 마약류 사용을 억제, 관리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약류 사용으로 발생한 중독질환을 치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현저한 장애로 작용하였습니다. 마약류 중독질환은 호전과 회복을 위해서 치료 재활에 오랜 시간과 많은 자원이 투자되어야 하는 난치성 질환입니다. 더욱이 마약류 사용은 전파 범위가 매우 넓고 장애를 초래하는 영역이 광범위하여 많은 사회적 부담을 초래하기 때문에 공공보건학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약류 사용은 일부 범법자들에게나 발생하는 드문 일이라 인식하였기 때문에 대규모 공공제를 투자하는데 인색하였습니다. 더욱이 마약류 사용자를 치료 재활하는데 많은 국고와 세금이 투입되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하였기 때문에 마약류 중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매우 형식적이고 유명무실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마약류 사용과 관련된 환경에는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마약류 오남용이 만연한 여러 서구사회로의 유학, 무역 등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새로운 마약들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신체적 손상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순간적 향락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소위 ‘클럽(club)’ 마약을 외국에서 경험하였으며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이를 나이트클럽, 유흥가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버닝썬게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는 하였지만 그 전파력은 가히 폭발적이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유흥가 등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실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2010년대 중반 한국은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하기에 이릅니다.
마약청정국이란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인 사회를 지칭하며, 그 사회의 마약류 사용을 억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에 반해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하였다는 말은 사회의 시스템은 더 이상 마약류 사용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마약류 사용의 폭발적인 전파력을 고려하여 이를 억제, 관리 시스템을 신속히 정비하는 동시에 마약류 중독질환자에 대한 치료 재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갖추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10만명당 20명이면 국민의 0.02 %에 해당하는 극소수를 의미하는데 그 정도를 벗어났다고 너무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약청정국을 정의하는데 사용되는 지수는 그 사회 전체의 마약류 사용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을 의미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약류의 사용은 그 은밀성 때문에 적발되지 않은 많은 마약류 사용자가 존재하는데 이를 의미하는 용어가 암수율(hidden criminal rate)입니다. 사회에 따라 암수율이 차이가 있고, 국내에서 자세하게 연구된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에서의 마약류 사용 범죄의 암수율은 최소 30배 이상 50배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까지 경찰에 적발된 마약류 범죄자는 2만명을 넘어선 상태이며 따라서 암수율을 적용할 경우 한국에는 이미 60만명 이상의 마약류 상습 사용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법마약류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만의 규모입니다. 이외에 식욕억제제, 안정수면제, 진통제 등 다양한 처방마약류의 오남용 또한 매우 심각하며 그 숫자를 모두 합산할 경우 그 규모는 10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100만명이면 한 광역시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 인구수를 의미하며 한국의 마약류 중독자는 한 광역시의 인구를 초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마약류 중독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대 및 청소년에서 마약류 사용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과 마약류 중독에 대해 치료 및 재활을 담당할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2015년 전까지 한국 마약류 사범의 가장 큰 비중은 30-40대 남성이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은 20대이며 50대가 그 다음을 차지하였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마약류 중독을 관리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마약류 사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30-40대의 사용이 줄어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제대로 된 치료 및 재활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기존의 마약류 사용자의 중 상당수가 사용을 지속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이 50대로 편입되면서 상대적으로 30-40대 비율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일 뿐입니다. 그리고 새로 유입된 20대 사용자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기존의 사용자를 훌쩍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치료재활 시스템도, 새로운 마약류 사용자의 유입을 방지하는 억제 및 관리 시스템도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는 말입니다.
중독질환은 질병 특성상 장시간의 치료기간이 필요한 난치성 질환이며 행동, 정서, 인지 기능의 손상으로 대인관계 직업기능 등 다양한 영역에 손상을 초래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고 및 범죄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그러한 중독질환이 발생하는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더욱이 더 어린 나이에 마약류 사용에 노출될수록 더 많은 양의 마약류에 사용이 있고, 더 극심하고, 더 오래가는 중독증상을 초래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급격한 생산인구 감소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마약류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연령이 20대가 되었다는 것은 총체적인 위험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우려 속에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존의 중독통합관리지원센터나 지자체의 중독관리팀에게 마약류 중독의 관리 기능을 강화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략도 구체적인 세부지침도 마련된 것이 없이 조급함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약류 중독을 관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마약의 생산 유통 공급의 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관리가 필요하며, 동시에 마약류 사용으로 발생한 중독질환의 치료시스템도 갖추어야 합니다. 예방교육부터 중독질환 발생 시 해독 및 금단증상의 치료, 재활 및 사회복귀, 재발관리 등 전 과정의 아우르는 조직적인 개입이 필요한데 그러한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기 전 시행되는 섣부른 개입은 오히려 다른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느긋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마약류의 위협이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즉각적인 위협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 역량이 골고루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암중모색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