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살다 보면 다툼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이나 부부관계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하기 쉽습니다. 한 번도 어긋남이 없이 항상 저절로 마음이 맞는 가족 관계를 원하시나요? 그건 환상이고 망상입니다. 잘못된 환상은 비참한 현실로 이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 행복하고 원만한 가족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를 많이 하여 싸울 이유를 미리 없애는 경우가 많고 설사 싸운다고 하더라도 화해를 빨리 잘하는 것입니다. 또 서로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약간의 긴장이 감돌 뿐 대규모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화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을 부르는 대화법, 얼었던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는 화해의 대화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말을 하는데,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하는 나쁜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 머리 속의 작은 악마는 실제 마음과 다르게 나쁜 말이 튀어나오게 합니다. “당신이 설거지 한 번이라도 해준 적 있어?” “너는 왜 이렇게 맨날 늦게 일어나니, 정말 게으르구나.”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올 때의 자신의 얼굴 표정과 말투를 상상해보세요. 이를 듣고 보는 상대방의 마음을 어떨까요?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당연히 이해되고 그럴만합니다. 사실 이 말의 실제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오늘 너무 힘든데 설거지 좀 도와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나는 네가 늦게 일어나서 학교에 지각하고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봐 걱정돼. 난 너를 사랑하니까.” 같은 뜻이지만 이렇게 말이 다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떤 쪽이 더 효과가 있을지는 말하나 마나입니다.
자, 여기서 볼 수 있는 대화의 법칙 제 1조, <‘나’로 말 시작하기>입니다. “난 당신이 도와줬으면 좋겠어.”, “난 당신이 소리지르면 너무 마음이 아파.” 이건 좋은 말입니다. “넌 날 안 도와주잖아.”, “넌 왜 소리를 지르니?” 이건 당연히 나쁜 말입니다. 나로 시작하느냐, 너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넌 왜 그 모양이냐?” “당신은 왜 사람이 그래?” 이런 말은 제발 쓰지 맙시다. 싸운 뒤 화해를 시도할 때에도 ‘나’로 말을 시작하면서 내가 잘못했던 점을 사과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하면서 다음부터는 서로 배려하기를 부탁합니다. “내가 먼저 큰 소리를 내서 미안해. 근데, 난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서 섭섭했어. 우리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하는 부부잖아. 다음부터는 이런저런 점을 서로 도와주고 배려해주면 좋겠어.”
대화의 법칙 제 2조는 <상대방 인격을 비난하지 않기>입니다. 예전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며 칭찬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지만 항상 칭찬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든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적과 조언이 필요한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상대방의 인격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행동 그 자체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실수로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와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되었을 때 이렇게 화를 내기 쉽습니다. “너 왜 이렇게 덤벙덤벙이야, 챙길 건 확실히 챙겨야지, 매사에 그런 식이잖아.” 이러면 바로 싸움이 시작됩니다. 사람 자체에 대한 즉, 인격에 대한 공격은 상대방의 동물적인 공격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바로 싸움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참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너무 소극적이고 위축된 사람이어서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대화할 때 인격 말고 행동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해봅시다. “당신 핸드폰 놓고 나왔네. 내가 전화 많이 했었는데 전화가 안돼서 많이 답답했어. 요즘 자주 그러는데, 아침에 좀 잘 챙겼으면 좋겠어.” 상대방은 이런 말을 듣고 나의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이야기하는데 안 된다고?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습니다. 이렇게 부드럽고 좋은 말로 10번 이야기한다면 대부분 잘 될 것입니다.
대화의 법칙 제 3조는 <상대방이 하는 말의 겉모양보다는 속뜻을 들어라>입니다. 말이란 실수하기 쉽고 애매모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말 자체에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말 자체보다 상대방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은 부인이 이렇게 말한다. “에휴, 어머님 잔소리 때문에 머리가 아프네, 너무 깐깐하신 것 같아요.” 부인이 이 말을 하는 진짜 속뜻은 ‘나 힘들었으니, 남편이 나를 좀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남편이 “그래 스트레스 좀 받았지? 집에 가서 좀 쉬어. 머리 아프면 내가 지압 좀 해줄까?” 이렇게 위로의 말을 던지면 부인은 금방 스트레스가 풀리고 자상한 남편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뭐? 잔소리? 어머니 말씀이 잔소리니? 그리고 깐깐하신 게 아니라 그 일은 당신이 제대로 못 한 거잖아!” 이렇게 말 자체를 보고 어머니를 비난한다고 생각해서 대꾸한다면 부인은 서운하고 화가 나서 시어머니를 더 꺼리게 될 것입니다.
대화를 잘하는 법은 이외에도 무척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3가지 법칙만 잘 지킨다면 싸움이 크게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또 기분이 서로 안 좋을 때 먼저 이런 대화법으로 말을 걸면 얼어붙었던 가족 관계도 눈 녹듯 녹을 것입니다. 말로 주고받은 상처는 바로 아물 수 있게 보듬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좋은 대화법으로 화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상처는 보듬지 않으면 점점 곪아가고 결국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툰 후에 며칠 동안 말도 안하고 서로 눈치만 보며 시간을 보내면 상처는 점점 무관심으로 변하게 됩니다. 말없는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말이 없는 부부라면 오늘부터 좋은 대화법으로 말을 걸어보길 바랍니다. 하지만 나쁜 대화법은 절대 안 되며, 꼭 좋은 대화법으로 대화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