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모
(순천향대학교부속 구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옛말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 그런 것이고, 그냥 당연한 것 같은 이 단순한 속담은 심리적 문제로 인해 신체증상이 유발될 수 있음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들은 ‘야, 그 일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발표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더니 속이 다 뒤집어져서 물도 못먹었다’와 같은 말들을 흔히 듣게 된다.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약을 찾는 장면은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왜 사촌이 땅을 사는데 내 배가 아픈 것일까? 이런 현상을 두고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정신신체(psychosomatic)’증상 혹은 ‘신체화(somatization)’증상이라고 한다. 즉, 심리 혹은 정신적인 문제들이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심리적 증상이 아니라 통증이나 다양한 위장관계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몸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과정이나 신경학적 기전들은 매우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외부의 스트레스나 자극을 인지하게 되면, 특히 그런 자극이 자신에게 부정적이라고 인식이 되면, 우리 몸에서는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데 이 교감신경이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장기들에서 증상들이 유발된다. 자율신경계가 많이 분포되고, 특히 교감신경계의 작용이 예민하게 작용하는 우리 몸의 장기들로는 심장 및 말초혈관, 위와 대장, 방광 등이다. 따라서, 교감신경계가 갑자기 과도하게 활성화 되거나 활성화된 상태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지속되면 이들 장기들에서 유발되는 증상들을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답답한 증상, 말초혈관의 수축으로 인한 통증이나 저린증상, 소화불량이나 구토증상, 소변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 심리적인 스트레스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정신신체 질환으로는 두통을 들 수 있다. 특히, ‘긴장성 두통’의 경우 만성적으로 반복되는 머리뒤쪽과 목, 어깨 통증을 동반하게 되는데, 원인의 대부분은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다. 늘 머리가 무겁고, 목과 머리가 아프다. 경상도 말로 ‘띵~’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이 증상이 악화되었다가 신경쓸 일이 사라지면 얼마 후 증상이 호전되는 양상이 반복된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증상들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대부분 별다른 치료없이도 넘어가게 되지만, 스트레스나 심리적 문제들이 지속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체증상들도 지속되겠지만, 이차적으로는 실제 신체 장기들의 이상이 유발되거나 당뇨나 고혈압, 만성 소화불량, 위염과 같은 만성적인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암의 치료와 경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최근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비만도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되고 악화된다는 점은 많은 연구들을 통해 이미 입증되기도 하였다. 시쳇말로 ‘이건 팩트다’.
이번에는 신체가 아니라 정신건강이라는 측면에서 정신신체 증상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런 정신신체증상들이 실제로는 많은 정신질환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늘 띵하게 아프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속이 막혀있는 것 같은 신체증상들을 주로 호소하는 ‘화병’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화병을 서양의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만성 우울증의 한 종류로 본다. 우울감, 불면, 의욕저하 등 흔히 말하는 우울증상을 주로 보이는 일반적인 우울장애와는 달리 대부분의 화병 환자들은 다양한 신체증상들로 고생하게 되고, 정신건강의학과보다는 가정의학과나 내과 등을 먼저 찾게 된다. 일반적인 우울장애의 경우에도 각 나라와 문화에 따라 호소하는 증상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의 증상들 중 가장 흔한 증상이 통증이며, 그 중에서도 두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식욕저하와 소화불량과 같은 위장관 증상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흔한 증상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실제로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의 상당수는 정신건강의학과보다는 내과와 가정의학과, 신경과 등에서 먼저 진료를 시작하게 되고, 필요한 치료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들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스스로 ‘공황장애’를 겪고 있음을 밝히면서 공황장애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불안발작을 일으키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을 동반하는 공황장애의 경우 진단을 위한 13가지 대표 증상들 중 10가지가 신체증상들이다. 가슴두근거림, 식은땀, 몸떨림, 숨이 답답한 느낌, 가슴통증, 구토 및 복부 불편감, 현기증, 한기나 열감, 마비되는 느낌이나 이상감각 등이 대표적인 공황발작증상이다. 대부분의 공황장애 환자들은 응급실, 심혈관내과 등에서 다양한 검사들을 통해 별다른 신체적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게 된다. 실제로 내과에서 심장과 관련이 없는 비정형 흉통으로 내원한 환자의 대부분이 정신신체질환에 의한 증상으로 내원하였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플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누가 비트코인을 샀는데, 몇 배가 올랐다더라’라는 소식을 접하면 저절로 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어진다. 특히, 평소 관계가 좋지 않고,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잘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땅값이 뚝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리면 평소 앓던 두통도 사라지고 머리가 개운해진다. 뭔가 이유는 잘 모르겠고, 설명하라고 하면 좀 힘들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현상이다. 앞에서 복잡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결국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따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정신신체적 현상들을 많이 경험해 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에게 야채를 먹이려고 하면 그냥 토해버려서 화가 났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시험기간을 앞두고 머리가 아팠거나, 시험시간 가슴이 두근거렸던 경험도 있고, 학교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배가 아픈 아이들도 흔히 본다. 사람의 정신 혹은 심리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신체의 증상을 만들어 낸다.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고, 소화불량이 생기거나, 몸이 여기저기가 아프다면, 특히, 걱정거리나 스트레스 후 증상이 발생하였거나 심해진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생긴 신체증상들이 심리적 문제에서 기인된 문제, 즉 우리의 심리상태가 우리에게 보내는 위험신호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정신적, 신체적 문제와 질환들은 발병 이전이나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치료함으로써 예방이 가능하고,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심리가 보내는 위험신호를 잘 감지하고 대처해 나갈 때,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