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톡 정신건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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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범죄가 아니다, 편견이 범죄다
“편견은 차별을 낳고, 공감은 회복을 만든다”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사공정규
(경상북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정신질환은 정말로 나와 무관한 일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주요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경험한 비율은 25.4%로, 성인 4명 중 1명꼴입니다. 게다가 이 통계는 일부 주요 질환만을 기준으로 한 수치입니다. 실제로 정신질환은 삶의 여러 국면에서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여전히 뉴스 속 강력 범죄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인, 흉기 난동, 방화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 여부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자연스럽게 덧씌워집니다. 그 결과, 정신질환은 공포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조용히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의 삶은 사회적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통계와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정신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15분의 1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들을 더욱 고립시킵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왜 우리는 그들을 위협으로만 보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 물론 언론 환경도 녹록지 않습니다. 조회수와 시청률 경쟁 속에서 자극적인 범죄 보도가 주류를 이루고, 정신질환은 여전히 오해와 낙인의 그림자 속에 놓인 채, 자극을 끌어내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보이지 않는 편견의 벽을 높이고, 치료를 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언론의 역할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넓히는 데 있어야 합니다.

    정신질환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삶의 흔들림 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마음의 어려움입니다. 몸에 병이 생기듯, 마음에도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피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미리 살피고 따뜻하게 돌보는 일입니다.

    예컨대 범불안장애는 청소년기 후반에 시작되지만, 많은 이들이 중년에 이르러서야 진단을 받습니다. 이는 불안을 ‘성격 문제’나 ‘기분 탓’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실제로 환자의 약 3분의 2가 발병 후 10년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습니다. 치료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을 놓치면 회복은 더뎌지고, 삶의 질도 그만큼 낮아집니다.

    경북의 한 30대 남성은 수년간 원인 모를 불안에 시달렸지만, “나약해 보일까 봐” 병원을 찾지 못했습니다. 증상이 심각해진 뒤에야 저의 진료실 문을 두드렸고, “당신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 버틴 것뿐입니다”라는 말에 끝내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처럼 정신건강 문제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신호와 이를 지탱할 수 있는 안전한 연결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식의 벽은 높고, 제도의 문은 여전히 좁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말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선뜻 나서길 망설이고, 언론은 극단적인 사례를 반복해서 부각시킵니다. 그 결과, 치료는 뒤로 미뤄지고 고통은 방치되며, 회복의 기회는 점점 멀어집니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지친 청년, 생계의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 역할 상실의 위기에 놓인 중장년층, 외로움에 갇힌 독거노인, 돌봄에 지친 장애인 보호자 등은 자신의 고통을 정신건강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처음 찾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 고위험군 상태에 이르러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부족, 인식 왜곡, 제도적 연결 단절이 겹쳐 만든 복합적인 공백입니다.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낙인을 줄이는 일입니다. 정신질환은 특정한 일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언론은 사건 중심의 보도에서 벗어나, 회복 사례와 일상 속 회복 탄력성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진솔한 회복 이야기와 지역사회 지원 사례는 신뢰와 공감을 쌓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상에 뿌리내린 정신건강 돌봄이 필요합니다.
    경상북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도내 24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는 마음건강검진과 개인·집단상담, 가정방문 및 위기개입상담, 마음안심버스 운영, 퇴원환자의 지역사회 연계 지원, 그리고 영유아기부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맞춤형 정신건강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은 위기 상황에서만 주목할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할 삶의 기반입니다.

    정신질환은 우리 곁에 있는 고통이며, 때로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늘진 마음을 향한 따뜻한 시선,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손길이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회복이 곧, 우리 사회의 회복입니다”

    지금 우리는 외로움 속에서 무너지는 마음들을 지켜내야 합니다.
    따뜻한 시선과 연결의 손길이 모일 때, 비로소 진짜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 길에 경상북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