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기억하시나요?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에게는 3살 때 만들어낸 상상 친구 ‘빙봉’이 있었습니다. 고양이 다리, 너구리 꼬리, 솜사탕 몸, 코끼리 얼굴, 그리고 사탕과 캐러멜 눈물을 가진 이 독특한 친구는 아이의 순수함과 창의력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라일리가 11살이 되어 이사와 함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빙봉은 기억의 심연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이별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바로 우리 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식물을 키울 때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는 ‘가지치기’처럼, 우리 뇌도 성장하면서 효율성을 위해 필요 없는 시냅스를 제거합니다. 사람의 뇌는 출생 후 유아기와 아동기를 거치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며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뇌는 자주 사용되는 시냅스를 남기고, 쓰이지 않는 연결은 정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 가지치기는 단순한 삭제가 아닌 ‘선택’의 과정입니다. 자극, 환경, 학습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경험이 풍부할수록 뇌는 더 잘 다듬어집니다.
많은 이들이 뇌 발달은 청소년기에 멈춘다고 생각하지만, 뇌의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30대 후반까지 계속 발달합니다. 도덕적 판단, 공감, 타인의 관점 이해 같은 능력은 성인이 되어도 계속 정교해질 수 있는 영역입니다.
또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 역시 성인기에도 활발히 변화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런던 택시기사들은 시험을 위해 약 25,000개의 길을 암기해야 하는데요. 실제로 이 시험을 통과한 기사들의 해마는 공간 탐색을 담당하는 후방이 일반인보다 더 발달해 있는 반면, 전방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고 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뇌의 구조도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의 뇌도 하나의 정원처럼 각 시기마다 다르게 가꾸어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놓을지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시냅스 가지치기는 자동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자극과 경험, 학습의 기회가 풍부해야 뇌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라일리의 빙봉은 기억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그녀의 감정과 행동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도 그렇게, 과거의 일부를 버림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뇌와 마음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