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톡 정신건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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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챗봇 활용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전문가 활용 심리상담의 현주소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김희숙
(구미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경북대학교 명예교수/김희숙숲마음건강연구소장)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고대 철학자 Aristoteles의 말처럼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여 살지만 서로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한 상심으로 마음과 몸이 아프기도 합니다. 실제로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 사이에도 마음을 다치고, 친구 사이, 학교나 직장에서, 심지어는 지나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또한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늘 존재하는 정치적·사회문화적·경제적 부조리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상황들이 현재 인터넷 강국이 된 한국에서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루머로 증폭되어 사람들의 피로감을 높일 뿐 만 아니라 분노나 좌절감이 조장되어 공격성, 우울, 자살, 중독 등 정신건강문제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정신과의사 스캇 펙(1936~2005년)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책의 서두에 “원래 누구나에게 인생은 고해(Life is difficult.) 라고 인정하면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세상을 살면서 힘들 때 상담실 문을 두드리면 인생의 나머지 절반도 성공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위로부터 따뜻한 지지를 받는 신체질환자와는 달리 정신적 고통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문제를 개인과 그 가족의 잘못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마지못해 정신건강관련기관에서 문제 증상 완화나 해결만을 목적으로 최소한의 관리만 받고 있습니다. 정신약물치료와 문제중심심리상담과 같은 전통적인 관리방법들은 급성기에 문제증상을 쉽게 완화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내담자나 그 가족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또 다른 스트레스에 직면하면 다시 재발함으로써 만성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정신건강복지센터

    그간 세계적으로 대면 인간관계 활동을 통제하게 만들었던 3년이라는 장기간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인공지능(AI)의 발달은 그 이후 AI챗봇을 활용한 문자나 음성 안내, 불편사항에 대한 질의응답 등이 일상화되며, 이제는 심리상담 측면에서도 활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AI챗봇과의 대화가 일부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부에서는 심리상담에서 AI챗봇의 활용이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부담을 경감시키는 익명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접근 편의성, 비용에서의 경제성, 연계기관의 정보 제공성의 강점이 있음을 강조하며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이와 관련한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AI챗봇과 단순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점도 있지만 경험이 달라서 정신적 고통의 특징도 각각 다른 사람들의 마음 돌봄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해결할 수 없다는 공통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사람들이 살면서 만나는 각종 스트레스 사건이나 다양한 관계에서의 상처로 인해 겪는 마음의 고통은 감정, 기억, 관계의 문제와 얽혀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모순되어 자신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 언어 정보에 기반한 분석으로 응대함으로써 언어적 표현보다 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더 의미있는 미세한 표정 변화 등과 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나타나는 신호들이 간과되어 진정한 공감을 통한 안정감을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담자별 특성에 맞는 역동적이고 심층적인 상담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두 번째는, AI챗봇이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내담자의 왜곡된 사고나 감정을 법적 윤리적 고려없이 지지함으로써 오히려 문제행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익명성의 장점은 있지만 민감한 내담자의 정보와 대화 내용이 안전하게 보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구성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기반 아래 등장하여 활성화 되고 있는 심리상담이론들은 전문가들이 통계로 만든 규정화된 기준이나 틀 아래 공식화된 심리상담보다는 내담자들 개개인을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 인정하고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문제나 증상들을 스스로 효과적으로 해결했던 순간들을 함께 탐색하고 그동안 견딘 힘이 이미 자신들에게 내재되어있음을 알아차리도록 도와 자존감을 높이는 단기상담기법들입니다.
    이러한 상담기법 중 하나인 내러티브상담(Narrative therapy)을 주창한 마이클 화이트(1948~2008년)는 “상담자는 파워풀한 전문가로서 미숙한 내담자를 설득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한 내담자가 속한 사회문화적 담론 뒤에 숨어 있는 의미들과 내재하고 있는 힘의 역학 관계 속에서 내담자의 힘듦과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내담자의 힘든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그 틈 속에서 내담자가 이미 가진 강점이나 문제해결을 위해 스스로 적용했던 효율적인 대처방법 등을 찾아내는 고고학자라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사회구성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의 기반한 상담이론 중심의 상담자들은 개방적 질문과 반영 등 다양한 언어적·비언어적 치료적 의사소통기법을 적재적소에 순발력있게 활용하면서 내담자가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도와 이후 어떤 것에도 의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습니다.

    이에 앞에서 언급했듯이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적 언어 정보와 문제중심 해결을 위한 공식적 방법들만 분석하여 훈련되는 AI챗봇이 인간으로서 근원적으로 유사한 경험과 윤리적 법적 기준을 바탕으로 내담자별 깊고 복잡한 내면을 다루는 숙련된 정신건강전문가 및 심리상담가들의 심층 심리상담은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챗봇 심리상담의 익명성, 편의성과 경제성과 같은 강점을 활용하여 초기 정신과적 치료나 심리상담의 문턱을 낮추어 접근성을 높이고, 객관적인 정보제공이나 반복적인 행동수정이 필요한 경우와 치료나 상담 이후 사후관리의 보조자로서 활용한다면 효과를 배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AI챗봇 활용에 대해 무조건적인 무시나 배제보다는 이러한 강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전문가와 심리상담가들의 역량 개발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