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해피 버스데이 투유(Happy Birthday to you)’, 생일축하 노래이다. 1893년 미국의 학교에서 아이들의 아침인사를 전하기 위해 두 선생님이 만들었다는 노래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최소한 전 세계 18개의 언어로 번역된 생일 노래, 소중한 탄생을 축복하기 위한 공동체의 의례이다. 생일축하는 아이의 존재를 세상이 공적으로 인정하고 환대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세이브더칠드런 생일 없는 아이들 출생통보제 도입 촉구 이슈브리프
그러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존엄한 탄생을 축하조차 받지 못한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림자 아동이라 불리는 아이들. 지난 6월 감사원의 조사로 2015년부터 2022년에 태어난 2,236명의 아이들이 이름도 없이 임시신생아번호로 살아간 삶이 밝혀졌다.1)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시번호 ‘22xxxx-4’, ‘15xxxx-4’, ‘18xxxx-4’로 세상에 등록된 아이들은 영양결핍으로 사망하거나 유기되고 부모에 의해 살해되었다. 부끄러워진 어른들은 그제야 서둘러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하였다. 한 달여 후 임시신생아번호로 남아 있는 아동 2,123명의 전수조사 결과 사망아동은 249명이 되었다.
냉동고, 야산, 쓰레기 분리수거장.
감사원의 조사 이후 진행된 수사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한숨을 계속 쉬었다.
사망확인 00명. 매일 늘어나는 숫자들이 겁이 났다.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계속 들려온 한여름이었다.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출생등록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도록 단체에서 일하는 우리가 좀 더 했어야 하는 일은 없었을까 되뇌다 잠을 설치는 날도 늘었다. 아이들의 죽음 앞에 내내 부끄러웠다.
몇 살이야.
작은 아이를 만나면 어른들은 인사처럼 묻는다. 여린 손으로 제 나이를 알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환한 웃음을 건넨다. 그렇게 아이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세상과 연결된다. 아이가 나이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를 공적인 존재로 인지하는 행위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시민으로서 우리의 인격은 출생 좌표에 의해 더 정확하게 표현될 것’이라 하였다.2)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또한 출생등록이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임을 밝혔다.3) 여전히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하는 출생 미신고 아동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아이의 고유한 세계가 임시번호로 밖에 기록되지 못하도록 한 법과 제도는 왜 지속되었을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 후 1개월 이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아이의 존재는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 등이 공적으로 등록 돼야 비로소 인정되는 것이다. 동 법률 제44조 제2항에 따르면 부모는 출생신고서에 다음을 기재해야 한다.
1. 자녀의 성명·본·성별 및 등록기준지
2. 자녀의 혼인 중 또는 혼인 외의 출생자의 구별
3. 출생의 연월일시 및 장소
4. 부모의 성명·본·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부 또는 모가 외국인인 경우 그 성명·출생연월일·국적 및 외국인등록번호)
5.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하는 협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 사실(「민법」 제781조제1항 단서)
6. 자녀가 복수국적자(複數國籍者)인 경우 그 사실 및 취득한 외국 국적
출생신고는 아이가 세상과 만나도록 이름을 짓고, 아이의 신원과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들을 작성하는 일이다. 이 간단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렵게 하는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 혼인 외 출생, 미혼부모, 미등록 이주아동, 병원 외 출생. 출산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렵거나 경제적·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부모들은 아동을 베이비박스나 위태로운 길 위에 아이를 유기하였다.4)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빛이 되는 아이들을 그림자로 살게 하는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취약한 상황의 아이들의 삶을 목격하면서 활동가로서 내가 배운 것은 개개인의 도덕과 상황, 사회적 신분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또 다른 비극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감사원의 조사 결과 발표 후 국회는 의료기관에서 아동의 출생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관련 법률을 개정하였다. 삶의 여정을 시작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에 공공의 역할이 강화되어 좋았다. 그러나 모든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취약한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한 부모를 향한 시선 또한 바뀌어야 한다. 법적 혼인 외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인정이 필요하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의 건강과 발달은 산모의 건강권과 부모 및 기타 돌봄의 역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자신을 향한 세계의 관습이 날카로울 때 준비되지 않은 부모는 아이를 부양할 책임을 다하기 어렵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아이 버리기를 부추긴다. 우리 모두는 그 세계를 만든 구성원이지만,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제도와 관습의 변화는 우리가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그치지 않을 때 시작된다.
임시번호로만 기록된 아이들의 삶을 이제라도 존중하기 위한 어른들의 목소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복잡한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된 부모가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아이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닫힌 문을 두드려 주는 이웃이 될 때 아이는 구조된다.
1) 감사원(23.6.22.). 감사원,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출생신고 없이 살아가는 이른바 ‘무적자’ 아동 중 영아 살해 등 아동학대 사례 확인 https://www.bai.go.kr/bai/board/base/detail?brdId=BAK_0007&postNo=202
2) 필립 아리에스(2003). 아동의 탄생. 새물결 출판사
3)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2014). Human Rights Council twenty-seventh sesssion. Birth Registration and the right of everyone to recognition everywhere as a person before the law.
4) 김윤신 외 (2023). 영아유기 치사범죄의 법의학적 분석. 대한법의학회지, vol.47, no,2. pp.3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