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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아빠의
T없이 맑은 딸의 동행
글. 정현우

시대가 변해도 생각보다 보편적이지 않은 아빠육아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공유되는 노하우 같은 것들도 부족했고, 대부분의 엄마육아 관련한 이야기뿐이었다. 더구나 아빠육아에서 오는 육아 태도가 딸아이의 성장에 영향이 갈 때마다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샤랄라한 공주 드레스나 치마 같은 옷을 입혀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은 치마입고 싶다는 말을 딸아이가 먼저 꺼냈다. 단지 아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감각을 틀어막고 있었구나 싶었다. 인형놀이 하는 대신 공놀이, 자동차 놀이하면서 지나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분홍색, 공주, 치마, 인형놀이 등 딸이라고 했을 때 기본적으로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두 편견이고 프레임에 가두는 사고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배제하였다. 균형 있고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었다. 결국 그것 또한 아집이 되었고 아이의 관심사를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밸런스 잡힌 감각을 최우선 목적으로 놓으면서 이성적 판단이 앞서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아빠육아에서 어려운 점은
고립감이었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은 결혼으로 육아공감대를 논할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다. 더구나 아빠육아를 경험하지 못한 지인들의 알맹이 없는 조언은 현실감제로에 가까웠다. 와이프 친구들 중에는 그나마 비슷한 시기에 육아하는 집들이 있었지만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 물어봐달라고 하는 것도 재촉하고 보채는 느낌이 들어 그마저도 안 하게 되었다. 결국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새벽안개속으로 빨려가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는 밥이었다.

일단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한 번은 미역국이랑 이것저것 만들어 놓고 먹겠다는 생각에 시간 오래 걸릴 것 같은 미역 불리기를 먼저 해놓기로 하고 마트에 다녀왔다. 라면 먹듯이 미역 한 봉지를 뜯어서 물에 담가놓고 두어 시간 정도 뒤에 집에 와보니 주방이 해변인 줄 알았다. 손바닥만 했던 마른미역이 40인분이 넘는 미역으로 변해있었다. 싱크대를 넘쳐흐른 미역폭탄들을 치우면서 그저 웃음만 나왔었다.
한두 번 이벤트성 끼니는 어찌어찌 준비해 볼 수 있으나, 매일매일 다르게 하루도 쉬지 않고 준비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우선 신생아시기에 분유를 줄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이 달래주는 것보다 먹이는 것이 더 큰 고민이었다. 이유식은 그나마 시켜 먹을 순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일반식부터는 답이 없었다.
결혼 전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지방에서는 퇴근하고 나면 술 먹고 늦게 들어오거나, 운동하고 야식 먹는 것이 주된 일상이었다. 그러던 내가 아이가 먹을 수 있고, 영양이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맛을 경험해 보지만 자극적이지 않게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매일 저녁이 되면 내일 무엇을 어찌 먹일지 이런 고민이었다.



세 번째는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이었다.

건설현장에서는 매일매일이 트러블이고, 그곳이 바로 전쟁터였다. 순조롭지 않은 건설현장은 싸움과 논쟁이 생활인 곳이다. 일할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이성으로 판단내리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 생각했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감정은 사치였고 스스로의 감정을 직면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 태어나 오롯이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에게는 이성만으로 접근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성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아이의 칭얼거림과 불안감은 커져갔다. 하루는 잠들기 전에 아이가 내일 바다 보러가자고 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아이에게 ‘그래 내일 가자’ 했으면 쉽게 넘어갈 일이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바다 왜 안가?’냐고 난리날 것이 뻔했다.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을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일은 어린이집을 빠지면 친구들도 못 만나고, 안 되는 것을 시작으로 바다에 갈 수 없음을 설명하였다. 결과는 한 시간을 울다가 지쳐서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속상함을 삼키는 것뿐이었다.

지금 아이가 세 돌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아빠육아라고 특별한 것은 크게 없었다. 그저 경험이 부족했던 것뿐이고, 방법을 몰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립감도 결국은 아빠육아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고일 뿐이지, 막상 놀이터에서 아이 또래친구들 부모님들을 봤을 땐 적극적으로 다가서면 마음이 다 열려있었다.
밥을 준비하는 것도 경험해보지 않은 막연함과 잘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감이었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기본은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물론 맛은 보장 못하지만... 그래도 잘 먹는 모습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그만큼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아서 보람도 있다.

아빠육아를 통해 가장 큰 변화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MBTI로 표현하자면 극 T에 가깝도록 합리적 결과 추론에 익숙했을 당시 F는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T 없이 맑은 아이와 있으면서 이성적 사고가 굳이 먼저가 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아이 마음에 접근할수록 생활과정에서 불안감은 확연히 줄어드는 게 보이니 스스로에게 못 느끼던 F적인 사고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육아하면서 티끌만큼 배운 것 같은 느낌!
앞으로 다양하게, 정확하게, 깊이 있게 잘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다.
초보아빠의 육아노력이 아이가 성장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