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계로의 변화는 영유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주 어린 영아가 TV 모니터를 터치해봅니다. 영아는 자신의 터치에도 아무런 화면 전환이 없자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가락에 힘을 실어 화면 이곳저곳을 반복하여 터치합니다.’ 우리가 모두 일상에서 한 번쯤은 목격했을 영아들의 이러한 행위는 ‘유리로 된 모든 화면은 누르면 움직이거나 화면이 전환된다.’라는 믿음을 지닌 glass generation(McCrindle, 2015)인 요즘 아이들의 직관적인 행동입니다. 또한 인공지능 스피커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낯선 디지털 기기도 두려움 없이 만지고 능숙하게 조작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유아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영유아들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매체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하며, 디지털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세상을 보는 감각은 아날로그 세상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많은 부모와 교사들은 실제 감각을 통해서 개념을 형성해 가야 할 영유아들이 어린 시기에 일찍 디지털 기술을 접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하며 유아기 디지털 경험을 제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만 24개월 이하 영아의 경우 발달의 특성상 디지털 매체 노출을 최소화하고, 실재적 감각 경험을 최우선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이 일상적인 도구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유아들에게 디지털 경험을 완전히 차단하고 아날로그 경험만을 하도록 하는 것은 유아가 처해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는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전미 유아교육협회(NAEYC, 2012)에서도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매체는 유아에게 유용하다고 인정하고, 성인인 교사와 부모는 유아의 발달에 적절하고 안전한 상호작용적 디지털 매체를 유아에게 기술적, 학습적, 소통적으로 노출시키며, 교육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상호작용적 매체가 유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매체를 사려 깊게 선택하고, 사용하며, 통합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교실의 모든 유아가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형평성과 접근성의 문제 역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유니세프에서는 2021년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제25호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 권리」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아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경험하며 학습하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사와 부모, 기업과 국가는 유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고 통제하던 것에서 벗어나 유아가 그들의 새로운 삶의 공간인 디지털 환경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존중받고,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책임을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한’과 ‘권한 부여’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유아가 건강한 디지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디지털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을 들어보았나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란 마크 프렌스키(Mark Prensky)라는 학자가 2001년에 명명한 용어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세대, 즉 생애 초기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디지털 원어민’ 또는 ‘디지털 원주민’을 의미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첫 번째 선생님인 우리는 유아들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까요? 디지털 기술을 교수학습 매체로 보기보다 유아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환경 변화를 반영하는 관점에서 디지털 활용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유아가 처한 맥락과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보육환경에 대해 사유하며,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됩니다(교육부, 2021). 변화된 세상을 살아갈 유아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의 디지털 웰빙을 위하여 보육교사에게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며, 이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한 보육교사의 디지털 역량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역량은 디지털 세상에서 자신감 있고, 분별력 있게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보육교사에게 필요한 디지털 역량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육부(2021)에서는 유아 교사의 디지털 역량은 단순히 디지털 매체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활용 능력을 넘어서서 디지털 네이티브의 교사로서, 그리고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디지털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더 나아가 교육과 관련된 전반적인 행위를 안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디지털 웰빙(digital wellbeing)과 관련된 지식, 기술, 태도를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아의 배움, 업무 수행, 일상의 3가지 차원에서 요구되는 디지털 역량을 6가지로 제안하였습니다. 유아의 배움을 풍요롭게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 및 자료에 관심을 가지고, 각 매체의 유형과 특징을 이해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디지털 기기 및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1) 디지털 기기 및 자료 활용 역량, 디지털 매체의 교육적 활용 가치를 인식하고, 유아의 놀이, 일상생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적절한 매체를 선정, 활용, 제작할 수 있는 2) 디지털 기반 교수학습 역량, 디지털을 기반으로 유아의 놀이, 일상생활, 활동을 관찰, 기록, 평가하여 유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교육과정의 질을 높일 수 있는 3) 디지털 기반 유아 이해 및 지원 역량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업무 수행을 위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학부모, 동료 교원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상호 이해하며 협력할 수 있는 4) 디지털 의사소통 및 협력 역량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서의 일상을 잘 영위하기 위해 디지털 시민으로서 저작권이나 개인정보보호 등 관련 규정과 예절을 준수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올바른 정보를 습득하고 생성하며, 디지털 매체를 통해 사회적 문제화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5) 디지털 시민의식,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과정을 발생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교육 관련 다양한 문제 및 갈등 상황을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6) 디지털 문제 해결 역량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보육교사의 디지털 역량을 더욱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유아의 배움, 업무 수행, 일상과 관련한 사례를 교사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유아의 배움을 풍요롭게 하는 디지털 역량은 다음과 같이 드러납니다. “우리 동네 돌아보기 현장학습을 나갈 때 미리 지도 로드뷰를 활용해 돌아본다든가, 아이들의 집을 찾아보는 활동을 하기도 해요.”, “아이들이 공룡 놀이를 하면서 진짜 공룡을 보고 싶다고 하여 증강현실로 공룡을 불러주었어요.”,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고 포토 프린터기를 활용하여 바로 사진을 출력해주고 있어요.”, “저는 패들렛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해서 기록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놀이를 흐름대로 구성해보기도 하고, 유아별로 기록할 수도 있고, 하루 일과를 중심으로 놀이를 기록하면서 다시 돌아보고 지원 사항을 적고, 한눈에 보기 편해서 자주 활용해요.” 어떤가요? 유아의 배움을 풍요롭게 지원하는 데 필요한 1) 디지털 기기 및 자료 활용 역량, 2) 디지털 기반 교수학습 역량, 3) 디지털 기반 유아 이해 및 지원 역량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지 이해가 잘 되시지요? 그럼 다음으로 교사의 무거운 행정 업무를 가볍게 하는 디지털 역량이 드러나는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담임 업무를 처리할 때 엑셀로 출결 처리를 한다든지, 카드 뉴스로 안내문을 만들어 보낸다든지, QR 코드로 학부모님께 놀이 영상을 보내거나 행사 평가를 한다든지…”, “동료 선생님들과 메신저를 통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구글 캘린더를 활용하여 월간, 주간 업무표를 실시간으로 함께 작성해요.”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4) 디지털 의사소통 및 협력 역량도 쉽게 이해되시지요? 마지막으로 디지털 시민으로 일상을 잘 영위하도록 하는 디지털 역량이 드러나는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동화를 유튜브에 그냥 올리는 것도 저작권 침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학기 초에 부모님의 동의를 다 받았어요.”,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부모님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연령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서 무기명 투표를 실행하게 되었어요.” 디지털 시민으로 일상을 잘 영위하는 데 필요한 5) 디지털 시민의식, 6) 디지털 문제 해결 역량이 무엇인지도 잘 파악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디지털 역량의 정도는 각기 다릅니다. 달리 말하면 교사들 간에도 디지털 역량 격차가 존재하지요. 교사의 디지털 역량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새롭게 강조되는 전문성이지만 교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공동체 구성원 간 서로의 디지털 역량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고, 새로운 도전과 시도 그 자체를 너그럽게 수용해 주고, 함께 성장해나가기 위한 어린이집 문화 조성이 필요합니다. 또한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매체를 갖추어 교사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보육교사의 디지털 역량 증진을 위한 다양한 교사 교육 콘텐츠 개발과 보급, 맞춤형 연수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교사 개인이 디지털 역량 증진에 관심을 두고, 자발적으로 다양한 연수와 교육에 참여하는 그것이 전제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사들은 현재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디지털 시대의 시민인 유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의 교육(pedagogy of listening)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많은 보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디지털 활용과 관련하여 유아와 디지털 기술과의 관계에서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이어가야 합니다.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려 깊은 사용이 요구됩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를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 ‘디지털 페다고지(digital pedagogy)’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디지털은 자동차와 닮은 부분이 참 많다고 여겨집니다. 자동차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익한 도구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역시 시대 변화에 따라 없어서는 안 되는 우리 삶의 반려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지요. 디지털이 가진 양면성을 이해하고,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건강하고 안전하게 디지털을 활용할 수 있는 교사들의 디지털 역량은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리라 생각됩니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네이티브의 첫 번째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계시는 모든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