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참가제한을 대체하는 과징금
김·장 법률사무소 공공계약팀 변호사 김태완
군소국가가 난립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진나라의 대신 하징서는 자기의 집에 놀러 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제나라 임금 영공을 시해한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 장왕은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죽인다. 장왕은 내친 김에 진나라의 땅 일부를 초나라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고, 세상 사람들은 하징서의 악행에 대해 제대로 응징을 하였다며 장왕을 칭송하였다. 이렇게 장왕이 우쭐해 있을 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대신 신숙시가 돌아왔고 장왕에게 그저 사신으로 다녀 온 바에 대해 보고만 하고 장왕이 진나라를 제압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나려고 했다. 불쾌해진 장왕은 신숙시에게 “하징서가 무도하게도 제나라 임금 영공을 시해했기 때문에 과인이 그를 죽였고 이에 대해 모든 이들이 칭송을 하고 있는데 그대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라고 물었다.
신숙시는 “어떤 농부의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 힘들게 키운 농작물을 먹어 치웠습니다. 밭주인이 그 농부에게 소를 잘 못 지켜 자기의 농작물을 망쳐 놓았다며 소를 빼앗았는데 왕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장왕은 “소를 잘못 지킨 농부가 잘못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소까지 빼앗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신숙시는 “임금을 시해한 죄인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를 처단하신 전하의 의리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남의 땅까지 탐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장왕은 신숙시의 충언을 받아들여 빼앗은 땅을 진나라에 돌려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고사에 나오는 진나라 대부 하징서의 이력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역사에 회자되는 포사, 서시, 하희 세 사람의 미녀가 있었고 이 중 하희는 초승달처럼 아름다운 눈썹과 봉황과 같은 눈, 봉숭아 꽃이 활짝 핀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희가 진나라 대부 하어숙에게 시집을 가 아이를 낳았고 그가 바로 진나라의 대부 하징서이다. 하징서가 제나라 임금 영공을 시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하징서를 처단하는 것을 넘어 진나라를 범한 것은 죄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다는 ‘혜전탈우’의 고사를 만들어 내었고, 신숙시의 진언을 받아들였던 장왕은 후에 춘추오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죄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다는 것은 엄벌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다른 대체 규제 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공공조달에의 입찰참가를 제한하였던 과거의 부정당업자 제재에도 흔히 적용되었던 이해이다. 국가계약법령에 규정된 20여 개의 부정당업자 제재사유 중 어느 하나에만 해당해도 최대 2년의 기간 동안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을 망라한 모든 공공조달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조달 비중이 많은 기업에 있어 경영활동을 접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위반행위의 경중을 묻지 않고 다른 대체 규제 없이 입찰 참여와 계약 체결을 금지하는 것으로 기업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준다는 비판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정부에게도 독점 공급자인 기업의 부정당업자 제재 시에는 적기 조달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부정당행위의 위반 정도가 경미하거나 해당 기업 외에 대체 조달 기업이 없는 경우에는 획일적인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대신하여 금전적 불이익인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게 된다. 이른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갈음하는 과징금부과 제도이고, 국가계약법령 개정을 통해 2013. 6. 19. 부터 시행이 된다. 금전적 불이익을 감수해서라도 공공조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변화였다.
그런데, 과징금 대체 부과 제도의 설계 당시 담합, 뇌물수수, 허위서류 제출 등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유들이 제외되고, 책임이 경미한 경우의 인정기준을 천재지변, 국내∙외의 급격한 경제여건 변화와 같이 매우 엄격한 사유로 설정하였으며, 처분청인 발주기관이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의 심의위원회를 거쳐 과징금 대체 부과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업무 구조를 만들면서 신설 제도의 활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징금 대체 부과의 첫 사례가 시행일로부터 7개월이 경과한 2014. 1. 23. 에 나왔다는 점은 첫 사례가 있었고 이후로도 과징금 대체부과를 위원회에 올리거나 과징금으로 결정되는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2014. 11. 기획재정부는 업체의 책임이 경미한 경우를 7가지의 사유로 늘리고 ‘유효한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담합, 뇌물수수, 입찰 또는 계약과 관련한 서류의 위∙변조 행위에 대해서도 과징금 부과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 처분자인 발주기관이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소관의 심의위원회를 거쳐 과징금 부과의 적정성과 가능성, 부과 금액이 정해지게 되는 절차적인 소요는 처분청이 입찰참가자격제한 대신 과징금 부과를 결정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과징금 부과가 ‘기업 봐주기’로 비춰질 것에 대한 우려도 처분청의 결정을 제한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진적인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20년 11월 과징금 부과 업무가이드를 발간하면서 중앙관서 계약담당공무원들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제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와 법원의 판례 등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는 한편, 처분청의 신속한 의사결정 진행을 위하여 심의기간을 단축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징금 대체부과는 입찰참가자격 대체보다 완화된 처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공조달의 안정성이라는 측면 외에도 획일적인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통해 기업의 도산이라는 사회적 손실을 막고 책임이 경미한 사안을 구제하고자 하였던 제도의 연혁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과징금 부과기준이 되는 해당 계약금액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그 적용사유 역시 ‘유효한 경쟁입찰이 성립되지 아니하는 경우’로만 한정될 경우 이는 정부 조달의 탄력성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완화된 처벌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관련 정부부처는 감점, 인증취소 등 부정당업자 제재에 수반하는 부수적 불이익을 입찰참가자격 제한과 과징금 대체부과의 구분 없이 적용하고 있다.
중국고사 ‘혜전탈우’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죄에 대한 처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 죄라는 것이 실체적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는 사안이라면 과연 남의 소가 내 밭을 넘어 온 것이 맞는지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