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우리들의 인문학’
< 의사의 인문학 | 저자 안태환 | 출판 생각의 길 >
글. 양원희
“매일같이 환자를 대하며 체득한 굳건한 진실이 있다.
언어에는 확실히 체온이 있다는 것이다.
체온이 묻어나는 언어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끈덕지게 포용한다.”
- 아이와 서점에 갔다가 표지에 이 말이 나를 끈덕지게 포용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에 지친 삶에 대한 위로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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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 문제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변적이고 비판적이며 또한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인간 본질의 정수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인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의사’라는 직업처럼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냉철해야 하는 직업도 없지만 의사라는 직업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질과 가까운 직업도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향한 위로만 바랐던 것이 참 부끄러웠다. 나에 대한 자성의 기회가 되었다.
-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보려 애썼지만, 결론적으로 오늘 근무도 혼란 그 자체였다. 환자들의 호소와 요구 그리고 다급한 응급 상황까지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버렸기 때문이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속도로 쫓기듯 일할 수밖에 없었다. 몰아쉬는 숨을 참아내지 못하기를 여러 번,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일까. 퇴근길에 맞이한 새벽 공기를 느끼고 있는 내가 이상하면서도 괜스레 서러웠다.”
-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안태환이 소개한 의료현장의 모습이다. 물론 의사든 간호사든 직업이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특별한 사명감 없이는 정말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생사의 갈림길을 목전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현장에서도 그래도 인간에 대한 긍휼과 공감의 시선, 사명감, 성찰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일 분, 일 초에 존경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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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떨까?
나르시시즘 대마왕에 지독한 자기연민과 모순 덩어리이다.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도 어찌 보면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면서도, 아이들이 문과 성향을 보이면 은근슬쩍 이과로 몰아갔다. ‘성숙’보다는 ‘성공’을 지향했고, 아닌 척 있는 대로 교양을 떨었지만 결국엔 ‘돈’이 참 중요했다.
물론 성공과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쁘다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내 삶 속에 타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미친 듯이 바쁘게 살아가면서 남들한테 위로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삶이라고나 할까. 다 내 욕심인 것을. 나는 열심히 살고, 열정을 다 하고,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순되고 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과 행동이 다르고, 상황이 변하면 가치관도 변하는 그런 인간인 것을.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졌다. 그리고 ‘인문학’은 남들과는 좀 다르게 사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은 이런 불완전하고 앞뒤 맞지 않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기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 저자가 환자에 대한 애정을 건조한 이윤으로 바꾸지 않고 사람의 향기를 품고 걸어가는 것, 손기술만을 수행하는 의사는 아닌지, 생명을 살리는 어진 인술을 마음술로 살갑게 구현하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가는 인생이 ‘의사의 인문학’인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인문학’을 거울삼아 ‘우리들의 인문학’을 만들어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