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공공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 이야기를 듣다
- 최삼영 진주시 총괄계획가 -
이번 특집 기사는 ‘총괄·공공건축가에게 지역 공공건축 이야기를 듣다’ 시리즈로, 최삼영 진주시 총괄계획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최삼영 총괄계획가는 2019년 6월에 초대 진주시 총괄계획가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진주시 총괄계획가로서의 역할, 진주시 공공건축과 관련한 성과 및 현안, 그리고 총괄계획가 활동의 애로 사항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개선 사항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향에서 총괄계획가로서의 임무를 부여받다
건축가로서 진주시를 처음 방문했던 시기는 2019년 2월에 임시 공공건축가팀이 구성되면서였어요. 당시에는 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이광환 위원이 임시 총괄을 맡고 있었어요. 저는 임시 공공건축가로 참석했었는데 이광환 위원이 총괄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사하면서 저를 추대하여 총괄이 되었어요. 진주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이후에는 객지 생활을 30년 넘게 했어요. 오랫동안 고향에서 멀어진 채 생활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마음에 도사리고 있었고, 진주시에 거주하고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 업무에 대한 부담은 있었지만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진주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업무에 임하다 보니 진주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해당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것만으로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까닭에 진주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 진주시 총괄계획가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밀려왔고 또한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참으로 다행스러웠던 것은 진주시청 공무원들과의 관계였어요. 같은 고향 사람이다 보니 친근감이 느껴졌을 것이고 사람들이 저에게 그다지 거부감이 없어 보였어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마치 이물질처럼 본인들의 업무에 시어머니 노릇하는 이가 하나 더 느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거든요. 그래서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다 보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진주시에는 설계사무소가 100여 개 있는데 지역 건축사들과의 관계, 공무원들과의 관계, 그리고 기존 진주시의 건축 및 도시와 관련하여 업무를 진행해 왔던 지역 교수님 및 전문가들과의 관계 형성과 유지에 대한 염려가 있어요. 그리고 고향을 떠나 있었던 30여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감, 서울과 진주라는 물리적 거리감, 온도차 등을 어떻게 줄여나가면서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심했어요.
위촉 당시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었으므로 서로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그동안 쌓은 인맥과 지식 등을 서로 접목해 교환하려고 계획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 이 부분은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어 강연과 토론 등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합니다.
초기에는 총괄계획가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정하기 위해 업무의 범위를 확정하지 않은 채 자문하고 애로 사항에 대해 듣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 순조롭게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는 ‘밥을 같이 먹으면 된다’라고 농담 섞인 충언을 해 주신 원주시 총괄건축가의 말대로 자주 식사 자리를 함께하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도 하고 저녁에는 밖에서 지역 공공건축가들과 시청 공무원들이 함께 자리를 만들어 격이 없는 토론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어요. 제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진주시에 거주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선후배 또는 그와의 인연 관계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과의 소통이 점차 편안해졌고 진주시 가는 일이 매우 즐겁습니다.
총괄계획가로서의 구상을 위해 진주시를 둘러보다
진주시는 역사가 천 년이 넘는 오래된 도시입니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서 늘 들었던 이야기가 ‘진주시는 문화적 향기가 있는 도시이고 역사와 교육의 도시’라는 것이었어요. 사천시, 남해군, 거제시, 고성군, 통영시, 함양군, 산청군, 의령군, 합천군 등 서부 경상남도 일원에서 수제들이 모두 진주시에 유학을 왔어요. 그래서 지금도 진주시 출신의 인재들이 중앙의 정재계에 진출하여 많은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러한 진주시에서 30년을 살았고 어머니를 뵙기 위해 매년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장소만 다녀서 그러한지, 아니면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인지 진주시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이나 역사를 전공하신 문화재 관련 위원분과 진주시 곳곳을 틈나는 대로 둘러봤어요. 총괄계획가로 위촉되고 가장 먼저 부탁한 일은 진주시 전체 지도를 제 방의 벽면에 붙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상에 진주시에서 건축 및 도시와 관련하여 추진한 일과 하고 있는 일을 표시했고 위치를 정한 후에 진주시를 탐색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말을 이용해 외곽 지역을 다니기도 했어요.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진주시의 모습을 인식하게 될 정도로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임을 그동안 몰랐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와 함께 어릴 때 추억이 깃들어 있는 장소들이 당혹스럽게 변화된 모습을 보며 섭섭한 마음도 들었어요.
<구도심의 쇠퇴> 어릴 적 거리를 걷다 보면 50m 간격으로 한 명씩 아는 사람을 만났을 정도로 붐볐던 중앙시장은 황량해져 있었습니다. 밤에는 불이 꺼진 가게들이 있어 도시가 황량하게 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돈을 들여 조성한 지하상가는 음침한데다가 사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현황이었어요. 또 촉석루 앞의 장어구이집들이 늘어선 곳은 늘 북적거렸고 많은 사람을 만나던 거리였는데 이제는 텅 비어 있어요. 이와 같이 어릴 때 자주 갔거나 기억에 큰 몫을 차지했던 장소들을 방문해 보면 완전히 바뀌어 있어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도시 외곽에는 혁신도시가 생겨 옛날에는 농지였던 곳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들어서 있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던 분지가 고층 아파트로 둘러져 있었어요. 이러한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에요.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은 그 규모가 적당하여 참 좋습니다. 한강처럼 크고 다가가기에 다소 부담스러워 바라보는 데에 그치는 대상이 아니라 가까이하기에 친근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요. 적당한 폭과 별로 깊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 품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외곽 지역의 옛 마을>
진주시는 6.25 때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이후 도시재정비를 통해 도로를 넓히는 과정을 거쳐 직교형 도시로 변화해 왔어요. 그런데 지수마을, 수곡마을 등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마을은 그런대로 원래 모습을 간직한 곳이 꽤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 마을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어요. 대표적인 마을을 하나 들면 지수면 승산마을인데 6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고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의 삶의 터전으로 많은 기업인이 배출된 곳이에요. 이곳에 위치한 지수초등학교는 여러 인재를 배출했으며 그중에는 금성(LG, GS) 고(故) 구인회 회장, 삼성 고(故) 이병철 회장, 효성 고(故) 조홍제 회장 등의 우리나라 재계 총수도 있어요. 현재 이 마을들은 다소 근대화되어 자꾸 도시화하는 데에 치중하지 말고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정신이 살아 있는 동네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버겁지만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어요.
또 진주 하씨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진양호 수몰 지구 인근에 수곡면이 위치해 있는데, 수곡면 원계리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교서를 받은 곳이에요. 그리고 남명선생 제자의 대각서원도 있고 충절의 고향 진주를 상징하는 파리장서에 참여했던 유림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 사건들이 꽤 많아요. 현재의 모습은 옛날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설프게 근대화되어 마을의 정취가 변모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예전의 품격을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진주시 민간전문가 제도의 효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다
진주시장님은 인문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도시행정학도 공부하여 도시와 건축을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보는 식견과 안목이 깊은 분이며 건축가의 역할 등에 대한 인식도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주시가 민간전문가 제도를 도입한 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공공건축 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결재를 받으러 가면 시장님이 중요하거나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총괄계획가와 협의가 된 일인지를 확인하신 거죠. 제가 농담처럼 “시장님, 가능하면 제가 사인하지 않으면 사인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의 말씀을 드렸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해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던 부서에서도 다시 안건을 들고 오게 되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이 한참 진행된 안건을 들고와 당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를 파악한 뒤에 무엇이든지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안건에 대해 느낌으로만 판단할 수 없어 현장에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고자 하는 목적에 적합하도록 잘 만들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담당 공무원들과 생각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공무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우리가 의뢰인이니 주인의식이 있어야 하며, 좋은 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됩니다.”라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에게 충분한 재량권과 시간이 주어지고 적절한 보상 등이 있어야 좋은 건축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시는 건축가들이 존중받는 도시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준공식 때에는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를 초청하여 꽃도 달아드리고 시장님의 측면 자리에 배석할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하며, 행사장에서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는 발언 기회를 드리는 배려가 있으면 진주시의 문화가 한층 상승할 수 있는 작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달했어요. 다행히 공무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잘 이해하고 동의해 주고 있습니다.
진주시 설계공모 제도 개선을 위해 힘쓰다
<설계공모 제도 개선>
진주시에 설계공모가 꽤 많이 있습니다. 저는 총괄계획가이면서 동시에 건축가로서 많은 공모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으므로 설계공모의 애로 사항을 몸소 체험해 보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설계공모 제도와 실행에 관한 불만들을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을 바탕으로 진주시의 설계공모 전반을 검토하고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먼저, 쉽게 접수할 수 있도록 온라인 접수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접수를 위해 먼 거리를 오가느라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는 것이 불합리해 보였어요. 그다음에는 제출물을 간소화했어요. 짧은 시간에 심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많은 제출물보다 심사에 꼭 필요한 제출물만으로 축소했어요. 참여사의 규모나 위세보다 참신하고 유용한 안을 뽑는 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구성에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 건축설계 전문가들을 중심에 두고 비전문가들은 제외했어요. 그리고 심사에서 당선된 설계안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모셔서 도움을 받기로 했죠. 또 공정한 심사라는 것을 주변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심사위원 풀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심사를 신중히 하려는 의도로 넉넉한 사전검토 시간을 보장했으며 현장답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다 보니 지금 진주시에서 설계공모를 시행하면 많은 건축가들이 참가하고 있어요. 몇 달 전에 시행되었던 도서관 설계공모에 200개가 넘는 참가자의 설계안이 접수된 적도 있었어요. 국가적으로는 낭비일 수도 있지만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방 도시의 설계공모에 이와 같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에 그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사 과정 관망> 저는 설계공모 심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요. 다만, 심사위원들께 심사하는 목적을 말씀드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 심사장에 들어가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좋은 안을 뽑아 좋은 결과물이 건축되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드려요. 그리고 심사평을 쓸 때도 선정하게 된 사유도 필요하지만 개선 및 발전 방향에 대한 사항을 좀 더 생각하여 여러 고견을 적어 달라고 부탁을 드려요. 그래야 심사평을 근거로 당선된 설계안을 좀 더 진전된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그리고 설계안을 조정할 때는 건축가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려고 합니다. 주민자치회, 공무원 등의 선입견에 의한 주장이나 비전문적 지식 등으로 불합리한 요구를 할 때 건축가가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중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은 결정자의 역할이 아니라 조력자이며 조정과 중개의 역할이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운영위원 심사 참여> 설계공모를 위해 운영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주관 부서에서 내용을 깊게 알고 있는 사람이 참여하며 기획부터 지어지는 과정까지 잘 돌아볼 수 있도록 모든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어요. 설계가 완료된 후에 지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본 공무원(감독관)과 함께 현장에 가서 언질을 하면 그런대로 반영이 되거든요. 시공업체의 선정을 입찰 형식으로 진행하므로 일반적으로 시공사는 기존처럼 작업해 오던 방식대로 이윤을 남기는 데에 초점을 두고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리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요. 그래서 시공업체가 선정되면 만나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건축 현장에 감독관과 함께 방문해서 의견을 조정하게 되면 감독관 또한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고 직접 나가서 사진을 찍기도 하며 과정과 결과에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한정된 인력에 따른 제한된 조건에서 모든 건축물을 하나하나 관리 및 감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이러한 의식들이 조금씩 개선되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운영위원에는 건축설계 단계부터 시공 단계까지를 지속적으로 지켜보아 줄 수 있는 공공건축가도 참여하고 있어요. 공모 과정부터 시공 단계까지 지켜보면서 지도와 조정을 하고 진행 과정을 공유하는 기회도 가지게 합니다.
친환경적인 건축·도시 공간을 위해 진주시에 시범사업을 추진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의 협업을 통한 카본넷제로 빌딩>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온실효과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류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발생은 건축 분야가 제일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괄계획가로 임기하는 동안 진주시에서 친환경적인 건축물의 시범 사례를 만들고 싶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생겼어요. 국내 최초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카본넷제로(carbon net zero)’ 빌딩을 진주에 건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본넷제로 빌딩이란, 탄소를 전혀 발생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건물을 말합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는 목구조 자문의 인연으로 협업을 하게 되었고 ‘친환경 생태건축’ 연구의 결과를 실증하려는 목적으로 건축물을 하나 지어 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19평 규모의 작은 건축물에 카본넷제로 시스템의 건축을 실현해 보자고 했어요.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친환경 설비, 구조 성능, 기밀, 단열 등에 대한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자재들도 많이 있었어요. 적용할 대상 건축물은 19평의 주민자치센터인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서 꽃집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 꽃집’이라는 공간이에요. 주민회관 옆에 지어지는 주민자치센터이며 공원 옆에 위치하고 있어 확장성도 있을 것 같고, 잘 지어지면 제대로 된 친환경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친환경 홍보용 건축물로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하면서 카본을 발생하지 않는 건축물을 샘플로 만들자고 시작한 거예요. 건축계획은 이가건축과 함께했고 시스템 개발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감리 및 인허가 등의 업무는 진주시 소재 조은건축사사무소에서 했어요. 협력 회사였던 패널라이징 구법을 개발할 수 있는 목조업체와 협업하여 단열 성능이 높은 패널로서 모듈러화 하였고, 탄소를 쓰지 않는 에코 콘크리트와 굽는 과정 없이 만든 비소성 벽돌을 선택하며, 태양열을 이용한 복사열 냉난방기를 사용하는 등의 계획을 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계획한 작업을 모두는 적용하지는 못했습니다. 비용과 현실적 문제 등이 있어 다소 생략된 것도 있어요. 건축을 카본넷제로로 하는 데 동의를 한 채 현재 착공했고 큰 장애가 없다면 내년 3월이면 준공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공사 과정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예정이에요.

<캐나다우드와 협업을 통한 NLT구법의 목조건축>
목조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관계로 캐나다우드와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캐나다우드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공공시설물 조성에 지원해 주고자 사업을 추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 사업이 불발되어 한국에서 사업을 진행하기를 원했어요. 그 당시에 때마침 제가 진주시 총괄계획가로 위촉되면서 캐나다우드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기였던 터라 진주시를 목조건축 선도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제 희망을 고지한 바가 있어요. 캐나다우드에서 시도하려고 한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로 못을 이용하여 공학목재를 만드는 NLT(Nail Laminated Timber)를 적용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소요되는 나무의 양도 규모 대비 상당했고 국내에서 작업해 본 업체도 드물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선, 200㎡ 규모로 설계가 된 주민자치센터 건축물에 적용해 보기로 했어요. 이미 설계가 완료된 것이어서 설계 변경이 필요하여 비용을 좀 더 책정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 부서와 협의해야 하는 절차가 요구되었습니다. 협의가 완료된 뒤에 진주시와 캐나다우드가 협약을 맺어 NLT 부분의 구조설계와 자재 및 시공까지 지원해 주기로 했죠. 시공업체는 캐나다우드에서 정했는데 시공업체 대표가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목구조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분이었어요. NLT는 지붕에 주로 사용되었는데 못을 20만 발 이상을 박았어요. 글자를 입력한다고 하더라도 소설책 한 권 분량과 맞먹는 양입니다. 그래서 시공업체에서는 초기에 예상했던 인건비의 몇 배가 넘는 비용이 소요되었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목자재 비용도 엄청 상승했어요.
소규모지만 설계공모로 진행했고 젊은 건축가인 볼드아키텍츠가 당선되었는데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구법으로 변경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동의해 주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건축가에게도 보람된 작업이었어요. 건축사, 시공사, 그리고 캐나다우드의 구조기술사 등 많은 이들이 적극 참여하여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부 전경]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그리고 올해에도 캐나다우드에서 지원을 약속한 것이 있어 어느 곳에 적용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 적합한 사례를 찾고 있어요. 아직은 민간건축물에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공공건축물 사례에서 출발할 것이나 이를 기회로 하여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캐나다우드에서는 아마도 진주시에 지속적인 지원을 해 줄 것으로 예상되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나아져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건축가 및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목조건축에 대한 교육도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목조건축물>
건축에서 탄소 배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주시가 전국적으로 민간전문가 제도를 전파하는 데 일조했던 것처럼 진주시가 탄소 감축 전도사가 되어 목조건축을 전파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아마도 내년쯤에는 제가 목표했던 목조건축물이 15채 정도는 지어질 거예요. 특히, 그중에는 100㎡ 규모의 경로당도 있습니다. 진주시청 노인복지과에서 경로당을 짓겠다고 입찰을 시행하여 도면을 가져왔는데 벽돌조와 박공지붕 구조로 설계된 늘 해 오던 오래된 양식이었어요. 책정된 비용 내에서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노인복지과의 담당자와 상의를 했는데 제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해 주었어요. 그래서 제가 경로당에 대한 새로운 표준이 될 대안설계를 하자고 제안하여 목조로 설계를 했습니다. 한 채를 먼저 시범적으로 건축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한 채가 세 채, 네 채, 여섯 채가 되었어요. 경량목구조에 중정을 통해 빛이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경로당을 만들었어요. 협소한 땅에 소규모의 경로당을 짓는데 사용자들이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공간에 들어가면 과연 행복할까?’ 제 어머니도 노인이신데 사용하고 있는 경로당을 방문해 본 결과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친환경적이고 따뜻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먼저, 한 채를 건축한 뒤에 사용 후기를 참고하여 계속 보완하면서 건축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여섯 채를 같은 모델로 짓게 되었네요.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기도 합니다만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인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진주시를 진주시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진주시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고심하면서 돌아보다가 진주시가 고향인 제 입장에서는 추상적이고 애매한 말이지만 고향다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살리는 다른 지역과 다른 향기와 품격을 드높이는 작업에는 적어도 새로 지어지는 거대한 건축물이 우뚝 들어서는 형태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기존부터 있었던 것을 잘 보존하고 사용하지 않는 유휴부지나 건축물 등을 좀 더 돋보이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한 생각을 하던 중에 우연히 진양호 소싸움경기장을 살펴보았는데 오래전에 건축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패널이 녹슬고 너무 낡아 보기에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를 입찰로 시행하여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는데 설계자와 의논하여 설계를 다시 하기로 결정했어요. 무엇보다 담당 팀장의 의지가 굳건했고 추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어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경기장을 보자마자 콜로세움이 연상되었어요. 온라인상에서 크로아티아 콜로세움에서 유명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소싸움경기장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연결되었어요. 이러한 생각들을 반영해서 리모델링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요. 이와 같이 하나씩 점차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새로 짓는 것보다 오히려 기존의 건축물에 새로운 가치를 넣어 주거나 입히는 것이 좀 더 의미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시는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도시이므로 이야기가 참 많은 곳이에요. 진주시의 도시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획의 기저에 역사적 문맥에 대한 배려, 지역정서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인식에 방향을 둔 행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정리하는 업무도 총괄계획가인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주시의 음식, 문화, 역사, 길 등을 누구나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그림이 담겨 있는 ‘진주택리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공공건축가로 서울시에서 모신 이관직 건축가에게 진주시 구석구석을 그림에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림에 진주시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중요한 일을 하려고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하고 도움을 받아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또 진주시청 건축과에 빈집 재생과 관련한 부서가 있어요. 저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진주시에 남아 있는 한옥과 빈집을 정비하는 것인 까닭에 현재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공건축가 인원이 증가했으므로 공공건축가 중의 몇 분과 함께 LH와 논의하여 빈집을 재정비하고 싶어요. LH가 지금까지 수직적 가치를 지향했다면 이러한 사업을 통해 수평의 가치도 시범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골 마을 곳곳에 산재하는 빈집들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치들을 잘 조화하여 농촌 체험도 하고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만들어 진주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접목하여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요즘 이러한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지역들이 많은데 다른 지역을 벤치마킹도 하고, 국내외 사례에 대해서도 담당 공무원들과 공유하여 진주시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담긴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