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빡, 박’
 봄은 바다에서 온다. 바닷가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있다. 칼바람을 뚫고 갯바위에서 들려오는 돌과 금속의 마찰음에 봄이 실려있다. 바다는 육지보다 한 철 빠르다. 육지는 찬바람에 몸을 움추리지만 바닷가 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물고기는 산란하는 등 생명력이 가장 충만한 시기이다. 해안선 갯바위에는 완전무장하고 눈만 내놓은 아낙들이 파도 끝에 묻어오는 봄바람을 등에 이고 해조를 긁어모은다. 봄이 바다를 건너왔다는 퍼포먼스다. 돌김과 가시리를 내놓는 갯바위 랩소디이다.
 파도가 갯바위를 더듬고 지나면 아낙들은 조개껍질이나 주걱 등으로 보이는 도구, 통칭 깔개를 가지고 돌김과 가시리 등을 채취한다. 초겨울 갯바위에 올라앉았던 돌김, 가시리 등 해조류 포자들은 설을 앞두고 식탁에 오를 만큼 성장하여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 몸에 활기, 봄기운을 불어 넣는다.
 동해에서 생산되는 명품 중 하나가 돌김이다. 돌김은 재미있는 사연을 가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전범이 되어 재판장에 섰다. 미군은 포로 시절 일본군이 ‘검은 종이를 먹이며 가학행위를 했다’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제시한 증거물이 ‘김’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요즘은 전 세계인의 건강식이 되었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해조류는 설 전에 채취한 것이 가장 맛나다. 설이 지나면 해조류가 부드러움을 잃는다. 김을 채취할 때는 소쿠리를 바위에 대고 조개껍질이나 쇠붙이로 빡빡 소리를 내며 긁어 담는 데 한 곳에 서너 번 정도로 만족한다. 씨를 말리지 않으려는 의도와 뒷사람에게 남겨주는 아량이 섞여 있다. 이렇게 모은 돌김은 몇 개의 소쿠리와 그릇에 옮겨지면서 돌가루를 제거하고 판에 말려 상품이 된다. 봄볕이 가득 차는 어촌 민가의 양지 녘에 김 틀을 나란히 펼쳐놓고 말리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김의 품질을 판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김을 그대로 물에 넣고 풀어지는 모습을 보는 방법이다. 좋은 김일수록 원초적인 제모습을 기억한다. 양식 김들은 물에 풀어놓으면 잘 풀어지지 않고 뭉쳐있지만, 돌김은 곧바로 개체별로 분리된다. 음식에 김을 풀어 모양을 내기도 하는데 양식 김은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야 하지만 돌김은 그냥 넣어도 잘 풀리고 향도 좋다. 돌김은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양식 김과 구별하기 위해 쓰는 말이지만 김의 학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돌김의 종류는 긴잎돌김과 잇바디돌김 2종이 있는데 동해안 영동지역에서는 긴잎돌김만 자란다. 우리가 통상 돌김이라고 부르는 김은 동해 연안 특산종인 긴잎돌김이다. 남해안에 서식하는 잇바디돌김보다 향이 짙고 폭이 넓으며 색이 검다. 돌김이 2월~3월에 생산되는 반면 초겨울 즉, 10월~11월에 출하되는 곱창김은 남서해안 김 양식장에서 생산하는 햇김의 이름이다.
 청정 동해를 기치로 돌김이 한창 주가를 날리던 1900년대, 한국관광공사에서 조사한 『전국향토특산물 실태조사』에 의하면 강릉 지방에서 생산지와 품명을 결합시켜 상품화할 수 있는 수산물로 강동면 안인진과 정동진, 심곡리에서 채취한 돌김을 꼽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
 동해안 갯바위가 내놓는 또 하나의 명품, 가시리는 아쉽게도 막바지이다. 아내는 도심 출신이 가시리묵을 ‘어떻게 아느냐며’ 마냥 신기해하지만 필자의 현역시절 고성이나 속초, 양양에서 겨울철에 맛을 볼 수 있었던 음식 중 하나가 가시리묵이었다. 식당에서 반찬으로 올라오던 가시리묵은 자리를 함께했던 분들이 귀하고 좋은 음식이라고 권했지만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예의상 한두 점 맛만 보는 정도가 끝이었다.
 가시리라는 이름만으로는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하지만 돌김처럼 갯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해조류의 일종으로 묵을 쑤어 식용했다. 묵이라는 음식의 정체성이 맛을 위한 음식이라기보다는 배불리기 위한 구황음식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맛에 대한 생각은 각양각색이다. 아내에게 가시리묵이 소울 푸드가 된 것은 겨울이면 어머님이 장에서 사다가 무쳐주시던 기억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속에서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남겨 놓은 ‘싸아~한 바다향’ 그 맛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시리에 대한 대다수 어촌 아낙들의 표현은 “삭발한 머리같이 거뭇거뭇하다”고 하면서도 ‘박박 깎은 머리칼처럼 까실까실해서 가시리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바닷가 갯바위를 잘 관찰하면 수면과 바위가 맞닿는 자리,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경계에 거뭇하게 자라는 해조류를 가시리라고 하는데 불행히도 필자는 실물을 찾지 못했다.
 갯바위에 붙어있는 가시리를 손으로 뜯거나 돌김 채취하듯 한다. 김과 다른 점은 가시리는 작고 가벼워 말릴 때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가시리를 씻고 걸러내어 잘 말리는데 워낙 작고 가벼워 순한 바람에도 날아가 버린다고 한다. 가시리묵을 만드는 아낙들은 이런 경험이 쌓여서 이제는 실내에서 신문이나 종이 위에 가시리를 널어놓고 난로를 피워 말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양양 전통장에서 가시리묵을 팔던 아주머니는 가시리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펼친다. ‘음력 8월~10월까지의 이른-가시리가 제일 쫄깃쫄깃하고 맛이 있지만 이때는 작아서 건지기조차 힘든 자잘한 크기이다. 11월~1월에 채취하는 것을 늦-가시리라고 하는데, 크기도 제법 크다. 맛은 이른 가시리보다 떨어지지만 묵은 만들 수 있다. 2월이 되면 통-가시리라 하는데, 가시리가 자라서 마디가 굵어진다. 이때의 가시리는 끓여도 묵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남쪽 지방에서는 국으로 먹는다고 한다.
 몇 해 전부터 새해 들어서면 영동지역 전통장을 돌아보면서 가시리묵을 찾았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날을 잡고 찾아 나서곤 했다. 2022년에는 양양장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헛걸음한 기억을 더듬어 올해는 전통 장날 찾아가 가시리묵을 구입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털어 구입했고 돌아와서는 주변에 한 모씩 나누어 주었다. 다만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리고 한주 걸러 고성군 간성읍의 전통시장을 찾았지만 상인은 구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명절에 혹시 조금 나올 수는 있지만 보장할 수도 없다는 것. 가시리묵은 만들기도 너무 어렵지만 또 너무 비싸다는 이유도 들었다. 올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지난해 마지막 판매한 것이 두부 반 모, 손바닥 반만 한 것이 8천원을 호가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구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자원도 없고, 일할 사람도 없다고 했다.
 한때 고성의 한 수산업자는 가시리묵을 시판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2년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어 불행히도 문을 닫았다. 폐업의 원인은 경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가시리의 생산량이 계속 줄었기 때문에 재료를 확보할 수가 없어 상품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장을 운영했던 이모씨는 ‘반응은 무척 좋았다. 장작불로 달이는 등 전통방식으로 만들었다. 생소한 음식이라 시연장과 시식장도 만들고, 직접 만들어 맛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노력했다. 진한 초록색에 맛은 비릿한 바다향이 강하고 입안에 이끼 같은 게 꺼글꺼끌 씹히는 낯선 음식인데도, ‘신기한 맛’이라며 없어서 못 팔았다고 했다.
 나릿가 갯바위에서 들려오던 봄을 재촉하는 소리는 이제 찾아다녀야 한다. 해조류를 채취하여 생활비에 보태던 아낙들이 이젠 횟집이나 식당 등으로 일자리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에 맞서는 것보다 식당일은 쉽고 짧게 일해도 주머니는 훨씬 두둑하다.
 아쉽게도 우리는 태초의 맛을 잃어간다. 봄바람 꽃바람이 불면 해조류의 맛은 꽃잎처럼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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