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엔젤투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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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vol.33 May

기고문

기고문

성균관대 글로벌리더학부 부교수 ㅣ 김상태

샌디에고 지역
엔젤 그룹의 성장

황현수

이 글을 쓰게 된 인연은 2009년,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교(UC Irvine) 박사과정에서 샌디에고 지역의 바이오 산업에 대해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500여개의 바이오·의료 기업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투자 규모나 고용 인력 등의 면에서 미국에서 세번째 정도에 해당하는 생명과학 산업 클러스터였습니다. 실리콘밸리나 보스턴 지역이 규모 면에서 샌디에고를 능가하였지만 실제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미국에서 가장 생명과학 분야 기업가적 활동이 활발한 지역임에는 분명했습니다. 특히 샌디에고는 실리콘밸리, 보스턴, 뉴욕과 같은 이미 여타 산업에서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바이오 산업이 성장한 도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1980년대까지도 해군―태평양 함대의 일부 기지가 위치해 있고, 방위산업체도 여럿 있습니다―, 관광, 농업, 이 세가지 산업이 전부였습니다. 1980년대 이후 바이오 산업과 관련된 사실상 모든 제도와 자원, 지식, 관행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저는 ‘구성주의자’의 관점에서 지역의 제도와 문화가 어떻게 출현하여 구축되고, 변화해왔는가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바이오 분야 기업가적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관해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지역의 일간지와 여러 매체에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바이오 기업가와 투자자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서 샌디에고 지역에서 열리는 개방된 네트워크 행사나 투자 설명회 등에 참석해서 참석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러한 행사 중 하나가 지역 엔젤투자자 네트워크인 ‘테크 코스트 엔젤스’(Tech Coast Angels, 이하 TCA)에서 조직한 창업경진대회(Quick-Pitch Contest)였습니다. 지역의 기업가 중개기관인 커넥트(CONNECT)에서 개최한 여러 네트워킹이나 멘토링 행사에도 참석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TCA의 의장과 부회장, 바이오메드 트랙(BioMed Track) 책임자 등을 실제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들이 어떻게 지역 엔젤그룹과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초기의 여러 난간들을 극복해 왔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분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지역에 안착한 이후, TCA를 조직하고, 엔젤 투자와 함께 커넥트의 자문기업인(Entrepreneurs-in-Residence), 중장기 멘토링 프로그램(Springboard Program)에 참여하면서 지역에서 창업가들을 길안내하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TCA―TCA는 샌디에고와 엘에이, 오렌지 카운티 등 5개 지역 연합 엔젤 네트워크였으며, 이중에서 샌디에고 지부가 가장 활동이 왕성했습니다. 2022년 4월에 샌디에고 지부는 뉴펀드 벤처그룹(NuFund Venture Group)으로 별도로 갈라져 나왔습니다―는 미국에서 회원들의 투자활동이 가장 우수한 네트워크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반면 벤처투자사의 경우, 아직도 지역에 안착하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몇개 소규모 투자사의 본사가 위치해 있지만, 대부분 실리콘밸리 등에 위치한 투자사들이 지점(branch, office)으로 운영하거나 커넥트 등에서 여는 투자설명회에 연간 수차례 참석하는 정도에서 지역을 들락날락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들이 지역 엔젤그룹과 네트워크를 만들어간 처음은 이러합니다. 지역에 엔젤그룹이 구성된 것은 1990년대 말입니다. 주로 퇴직한 기업 경영자 20여명이 당시 실리콘밸리 지역의 엔젤그룹(Band of Angels)을 모델로 하여 샌디에고 엔젤그룹(San Diego Band of Angels)을 구성합니다. 인터뷰한 엔젤들에 따르면 초기 구성원 중 상당수는 기업 경영자로서 퇴직 이후 골프와 해변을 즐기기 위해 샌디에고로 이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이 골프를 시작했지만 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워졌다고 합니다. 당시 지역에는 IT와 바이오 분야 창업이 이어졌는데, 소규모 투자와 함께 자신들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의 젊은 창업가들을 도우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역에는 커넥트가 건실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커넥트의 창업가 자문이나 네트워크 활동에 한두명씩 참여를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중장기 멘토링(Springboard)의 경우, 선발된 유망 창업가에게 필요한 7~8명 정도의 베테랑 기업가, 투자자들이 1~2주에 한번씩 해서 6개월에서 1년까지 마주 앉아서 사업계획도 같이 검토하고, 필요한 투자자도 소개하면서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창업가가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를 공유하면서 해결하고, 기업가를 독려해서 앞으로 나가게 방식입니다. 초기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벤처투자 이전 단계까지 이끌고 가게 됩니다. 여기에 엔젤들이 합류하면서 자신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창업가들에게 나눠줌과 동시에 창업기업의 이사회나 경영진으로 참여합니다. 일부는 자신이 멘토링 하는 창업기업에 엔젤투자를 하게 됩니다. 물론 창업기업이 유망하다면 자신들의 동료들도 엔젤투자에 끌어들입니다.

골프 치면서 은퇴 후 인생을 소일하고자 했던 많은 퇴직 경영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소식에 지역과 타지에서 더 많은 베테랑들이 합류합니다. 이들은 같이 일했던 옛 동료들을 샌디에고로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직장 옛 동료들의 달콤한 유혹에 끌려서 많은 이들이 지역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지역 엔젤그룹은 엘에이 등 남부 캘리포니아의 엔젤투자자들을 아울러서 TCA의 설립을 주도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지역 네트워크로 발전하였고, 지역 창업 생태계에서 핵심 주체로 성장해 갑니다. 지역 엔젤그룹(NuFund Venture Group와 TCA) 홈페이지와 백서 등에 따르면 샌디에고 엔젤그룹은 현재 3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고, 분사한 2022년 4월 이후부터 12월까지 9백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지역 엔젤그룹은 생명과학 분야 투자가 미국 전역에서도 가장 활발합니다.

바이오 분야의 경우,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너무 높아 상당한 규모의 벤처투자자들도 멈칫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역 엔젤그룹이 바이오 분야 투자를 위한 지식과 절차적 구조를 어떻게 발전시켜갔을까요? 그리고 엔젤 투자의 경우, 소규모 투자로 인해 개별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 결정을 위한 투자 실사(due-diligence)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투자 건당 수익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집단행동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장애물에 부닥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돌파했을까요? 이들은 지역 창업 생태계에 어떻게 녹아들었을까요? 지역의 엔젤그룹과 네트워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간 과정과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지역의 다양한 엔젤 그룹들이 생성되면서 세제지원과 같은 제도도 도입하였고, 지역허브도 구축하였습니다. 이제는 지역에서 뿌리내리기를 넘어 생태계로 뻗어나가면서 지지목 역할까지 맡아야 합니다. 인터뷰와 역사적 문헌, 엔젤투자 자료 등을 기반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 번 연재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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