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구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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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VOL 43
‘리사이틀(recital)’이란 음악에서는 독창회나 독주회, 무용에서는 어느 한 사람만의 무용을 중심으로 하는 무대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흔히 단독 공연 무대를 리사이틀이라고 하는데, 1840년 런던에서 리스트가 독주회를 가졌을 때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리스트의 독주회가 그랬듯, 피아니스트의 단독 연주 무대나 성악가의 독창회가 사전적 의미의 리사이틀이라는 말에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명 이상이 연주하는 조인트 리사이틀도 많아졌고 사중주(四重奏), 즉 콰르텟(quartet)도 리사이틀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리사이틀을 생각할 때 그 대척점에 있는 오케스트라를 떠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케스트라는 그야말로 대규모 악단이다.
사진1) 인천서구문화재단 2020년도 기획공연 「신년음악회」
콰르텟은 크게 피아노4중주와 현악4중주로 나뉘는데 이중 현악4중주는 오케스트라의 앞, 부채꼴 모양의 네 가지 현악기만으로 구성된다.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와 첼로의 위치만 바꾸고 악단이 아닌 개인 연주자 네 명이 모여서 작은 실내악 단위로 연주하는 것이 현악 콰르텟 리사이틀이다. 그러니까 리사이틀은 독주거나 독주에 준하는 작은 규모의 연주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작은 규모의 연주회라서 시시하다거나 보잘 것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보통 오케스트라보다 작은 공연장에서 하는 작은 규모의 공연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규모의 크고 작음은 질의 좋고 나쁨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사이틀은 한 명이나 두 명, 혹은 네 명이 연주회 전체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긴장감은 오케스트라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곤 한다. 생각해보자. 50~100명 속의 한 사람으로 연주하는 90분과, 나 홀로 혹은 서너 명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90분의 차이를. 때문에 어떤 리사이틀에 가도 연주자가 뿜어내는 긴장감은 가히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관객도 덩달아 긴장하게 되는 연주 초반의 아슬아슬함, 연주가 계속 되면서 만들어지는 몰입의 황홀감, 그리고 연주의 끝에서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대부분의 리사이틀이 관객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진2) 인천서구문화재단 2022년도 기획공연 「존 노 리사이틀」
인천서구문화재단에서는 올 가을 그야말로 리사이틀의 진수를 보여주는 두 개의 공연을 선보였다. 첫 번째는 9월 청라블루노바홀에서 열린 테너 존 노의 리사이틀이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데뷔를 한 그가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알린 것은 <팬텀싱어 3>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존 노는 그가 속한 크로스오버 팀 ‘라비던스’가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아쉽게 팬텀싱어 무대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군데서 그의 이름을 들었던지라 공연장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1부 낭만주의 시대 독일가곡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아델라이데로 문을 열고, 저 유명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의 마왕으로 마무리되었다. 베토벤에서 슈만(Robert Schumann])을 거쳐 슈베르트의 대표 가곡으로 구성된 1부에서 관객의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마왕이었다. 피아니스트 정태양의 정열적인 연주와 더불어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목소리로 마왕 특유의 템포를 잘 살린 존 노의 목소리는 관객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인터미션 이후의 2부는 한국 가곡으로 꾸려졌는데, 역시 관객의 호응은 2부가 더 컸다. 한국말로 된 곡이라 가사를 다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래가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배우고 들었던 곡인지라 관객의 호응이 더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2부에서 그간 잘 접하지 못했던 <무서운 시간>, <첫사랑>, <마중>을 듣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이번 리사이틀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음악이 청중과 공명을 일으킬 때 어떤 마법이 일어나지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충만한 시간이었다.
사진3) 인천서구문화재단 2022년도 기획공연 「타카치 콰르텟 리사이틀」
10월, 인천서구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한국 관객들과 인사를 나눈 비올리스트(violist) 리처드 용재 오닐이 속한 타카치 콰르텟(Tacăcs quartet)의 리사이틀이 있었다. 공연 전 작지 않은 공연장을 가득 매운 관객의 작은 웅성거림 속에서 공연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이든(Franz Joseph Haydn)과 바르톡(Bartók Béla),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현악4중주로 꾸며진 이번 무대는 가히 압권이었다. 특히 바르톡의 현악4중주 6번은 어떤 해설이나 사전 정보 없이도 작곡가 바르톡이 곡을 쓴 2차 대전 말기의 암울한 절망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연주였다. 이번 타카치 콰르텟의 연주는 리사이틀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을 뿐더러, 아주 숙련된 연주가 어떤 모습인지, 그들의 합주가 관객에게 어떤 만족을 주는지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무대였다. 네 개의 현악기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면서, 적절하게 서로를 받쳐주고 지지하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무한한 감정의 고양을 불러왔다. 특히 이번 리사이틀은 미세한 디테일이 연주의 품격을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해주어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천서구문화재단이 출범한 이후, 인천 서구에서 다양한 문화 공연을 만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 되었다. 신명나는 국악부터, 비보이들의 댄스, 대중가수의 공연과 클래식 공연까지 그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공연들이 동네 어디에선가 늘 개최되고 있다. 게다가 ‘정말 이 가격이라고?’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가격은 그야말로 선물이다. 청라블루노바홀이 생긴 이후 여러 번 관람할 기회를 가졌는데 인터미션이나 공연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사실 저 말이었다. 동네에서 좋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말이다. 리사이틀이 뭔지, 현악사중주가 뭔지 알고 모르는 것은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사전 정보나 지식이 많다면 더 많이 느끼고 누릴 수 있겠지만, 이번 두 번의 리사이틀은 그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공연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입증했다. 두 리사이틀은 가곡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거칠어진 마음을 다독여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겨울이라는 긴 칩거의 시간으로 들어가지 직전, 이 황금 같은 가을을 동네 어디에선가 펼쳐지고 있는 공연들과 함께 해보시기를 추천한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슬슬 걸어서 좋은 공연을 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포근해진 마음을 가지고 귀가할 수 있다면. 그런 하루가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일생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번 리사이틀을 놓쳤더라도 앞으로 무궁무진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 가을, 동네 공연장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