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덕질은 틀리지 않았어요’ 영화 <성덕>

1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되뇌었다.

특정 대상에 대해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오타쿠(일본어: オタク)는 과거 부정적인 의미를 많이 지녔다. 한국에서는 이를 ‘오덕’, ‘오덕후’, ‘덕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바꿔 불렀고. 영화의 제목인 성덕은 성공한 덕후를 줄인 말이다.

영화 <성덕>은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성범죄사건의 중심에 섰거나 연루된 연예인의 팬이었다는 이유로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시작한다. 가수 정준영의 ‘성덕’ 이었던 오세연 감독은 과거 MBC 예능 ‘별바라기’에 출연해 정준영을 위해 팬레터를 읽을 정도로 이른바 성공한 덕후였다. 자신은 노래할 테니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응원했던 그의 오빠. 정준영은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만들고 단체 채팅방에 유포한 혐의가 밝혀진다. 오 감독은 행복한 덕질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본의 아니게 종료된 덕질로 인해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 헤매게 된다. 나이 먹고 방송국이나 촬영 현장을 쫓아다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법원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그 오빠.


1

출처) 배급사 오드


자신이 좋아했던 아티스트가 범죄자가 되면서 감독은 자신의 ‘덕질’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의 학창시절 추억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게 되었다. 오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든 김다은 조감독 역시 강제로 덕질을 종료하게 됐다. 그는 빅뱅의 ‘승리’ 팬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스타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추억하고 애도하며 자신들을 되돌아본다. 그의 앨범, 사진 등 다양한 굿즈 화형식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지워보려 하지만, 그 과거는 그대로 남아있다. 오히려 당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게 된다.

감독은 주변에서 이제는 범죄자가 되어버린 스타의 팬이었던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들에게 덕질은 어떠한 의미인가, 우리가 했던 덕질은 잘못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범죄는 스타가 저질렀는데 죄책감은 왜 팬들에게도 몰려오는지에 대한 물음도 함께 나온다. 자신이 좋아했던 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믿음이 범죄의 방조가 된 것처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팬들. 이들은 자신들의 덕질로 스타들에게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게 했는데,자신들과 같은 젊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것을 넘어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

범죄자가 된 스타를 아직도 옹호하고 있는 많은 팬들은 많이 남아있다. 감독은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한다. 감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집회에 섞여보기로 한다. 광화문 광장 가득한 태극기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른들은 무슨 믿음과 의지로 광장에 서게 되었는지 직접 체험한다. 누군가를 열렬히 믿는 마음은 때로는 편향된 신념으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답을 찾게 된다.


1

출처) 배급사 오드


<성덕>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큰 화제를 불어왔다. 제25회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제7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도 남을 정도로 매 순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스타가 있는 이유는 팬이 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전제를 놓치는 스타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오세연 감독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서 출발하지만 해당 이슈를 공유하는 세대들에게서는 강력한 공감대를 끌어냈다. 적은 상영관과 많지 않은 회차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 1만 명을 넘긴 성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팬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누군가의 덕후였다면 볼 이유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그 덕질의 존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덕질을 그만 뒀다면, 정말 이 영화는 당신의 인생 영화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1

연예인 덕후였지만, 그 연예인들이 범죄자가 되어 탈덕한 청춘들의 일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성덕. 스타의 모든 것을 사랑하던 덕후였지만, 이제는 범죄자가 된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목소리를 솔직하고 가감없이 들을 수 있는 영화. 팬은 범죄자가 된 스타에게 이렇게 외친다. “고생 많았고 벌은 달게 받아라!”

범죄자가 된 스타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은 느낄 수 있지만, 덕질하던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덕질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