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최적의 솔루션,
투자계약

법무법인 이후
류권영 변호사

최근에 있었던 법률자문 건 하나가 기억에 남습니다. 초기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는 액셀러레이터 회사의 사례였는데, 해당 액셀러레이터는 2년 전 투자 당시 기업에게 넓은 재량을 인정하는 취지에서 투자자의 경영참여권과 투자계약 위반 시 불이익 조항을 모두 양보하고 창업자가 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는 이례적으로 가벼운 내용의 투자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투자대상기업은 최근 해당 액셀러레이터의 명시적인 반대에도 창업자의 지인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투자단가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액셀러레이터는 상법 등 관련 법령은 물론 투자계약서상에도 창업자 내지 투자대상기업의 독단적 경영행위를 저지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였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워지자 투자금 회수가 더 불투명해지기 전에 ‘울며 겨자먹기’로 당시 기대했던 주식가치에 현저히 못 미치는 가격에 주식을 매각하고 투자금 회수(Exit)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액셀러레이터가 투자업계를 대표하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사였기 때문에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초기투자 영역에서는 위와 같은 사례가 드문 것이 아니고 특히 엔젤투자자(개인)에게는 투자계약이 등한시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제가 곰곰이 생각한 바로는, 엔젤투자자의 경우 조직을 갖춘 투자회사에 비하여 리스크관리 체계에 있어 취약할 수 밖에 없고, 엔젤투자자는 투자대상기업의 분야에 대하여 고도의 식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면 누군가(투자회사에서는 리스크관리 부서 인력이라고 할 수 있음)의 견제도 없이 계약관계 및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투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투자자가 투자대상기업으로부터 신주를 발행받는다고 하면 그 자체로 상법에 근거하여 단독주주권, 소수주주권 등 주주의 권리가 인정됩니다. 하지만 벤처투자자가 고위험을 무릅쓰고 창업·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히 재무적 지원만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벤처투자자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을 키우는데 일조하여 투자의 성공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지에 기인하는 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창업·벤처기업은 객관적인 기업가치 평가가 어렵고 아직은 창업자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가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벤처투자자는 상법에서 정한 주주의 권리 외에도 경영참여권, 창업자의 경업금지의무 등 견제 장치, 다양한 상황에서의 투자금 회수 방안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벤처투자에 적합한 투자계약 체결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사모펀드 영역에서 라임, 옵티머스 사태 등이 문제되면서 개인과 같은 일반투자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2021년 10월 21일부터 개정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며 운용방법을 기준으로 사모펀드를 구분하는 것에서 출자자 구성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개인과 같은 일반투자자가 출자하는 ‘일반 사모집합투자기구’에 대해서는 투자자 보호장치가 강화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본시장법 개정 과정의 투자자 보호 분위기는 엔젤투자자와는 무관합니다. 자본시장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은 펀드에 출자하여 간접투자를 하는 자로서 위험감수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일반투자자인 것인데 반하여, 엔젤투자자는 스스로의 전문적인 투자 역량에 기하여 투자대상기업에 직접투자를 하고 그 판단에 따르는 투자 위험을 스스로 감당해내야 하는 전문적인 투자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엔젤투자자들은 투자회사의 여러 부서가 견제와 협력을 거듭하며 일구어 내는 위험관리를 홀로 해내야 하기 때문에, 투자대상기업 및 창업자와 체결하게 되는 투자계약을 더욱 더 진지하게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업계에서 통용되는 투자자의 많은 권리를 양보하더라도 어떠한 권리를 양보하는 것인지, 이로 인해 어느 위험을 감당해 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숙고 끝에 판단을 내려야만 예상치 못했던 위험에 직면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가 공동으로 벤처투자업계의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투자계약서 정리 작업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년 11월 30일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투자계약서가 올해 6월경 각 협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시가 되었으니, 투자자분들은 이와 같이 업로드 된 투자계약서들을 참고하신다면 혹시라도 간과할 수 있는 법률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