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소외된 국토의 90%에 피를 공급하는 엔젤 투자

충청 엔젤허브 운영위원장
대덕넷 대표 이석봉

사람은 그가 사는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어느 시대에 사느냐에 따라 그가 추구할 가치가 달라진다. 식민지 시대에는 독립을, 전쟁 시대에는 평화를, 저개발 시대에는 발전을, 권위주의 시대에는 자유를 추구한다. 추구할 가치의 다른 표현은 시대정신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은 기적의 상징이다. 식민지 국가에서 70여년 만에 세계적 국가가 됐다. 세계의 경제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3일 우리나라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1964년 기구 설립이래 처음 있는 지위변경이다. 대한민국의 실력이 객관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는 징표라고 하겠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여럿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적폐청산을 공정을, 경쟁을, 4차 산업혁명 성공을 내세울 수 있다.
선진국 대한민국이 다른 선진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이다. 선진국들의 특징은 전국에 사람들이 분산돼 있으면서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갖고 있고, 높은 삶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이래로 ‘사람은 서울로’란 말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격언처럼 여겨져왔다. 지금도 지방의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 삶의 질, 결혼, 교육 등등의 이유로 서울로, 서울로 줄을 잇는다. 한 번 서울에 간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떠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집중률은 세계 최고이다. 1962년 경제개발을 시작하며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던 국가가 40여년 만에 3만 달러로 급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집중이었다. 지역으로는 수도권으로, 기업으로는 대기업으로, 업종으로는 제조업으로 자금과 인력, 제도 등을 몰아주었다. 이른바 경사형 생산방식이다. 그리하여 20.8%이던 수도권 인구는 2021년 현재 50%가 넘었다.
지금까지는 서울 집중이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던 셈이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 구분 없이 서울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만 세계적 메갈로폴리스가 되면 한국은 지속가능할까.

서울이 성장하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방으로부터 우수한 인재의 무한 공급이었다. 꿈과 희망을 품은 젊은 인재들이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고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격차가 커질수록 지방으로부터의 인력 공급은 어려워져 가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집값 급등은 서울에 있는 사람들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
‘지방 소멸, 수도권 폭발’, 최근 한 중앙지의 헤드라인이다. 지방과 수도권의 공존의 파트너이지 적대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 상황은 한쪽은 죽고, 한쪽은 사는 극단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11.8%이다. 서울 0.6%, 인천 1.1%, 경기 10.1%이다. 이쪽 지역이 인구, 소득, 문화, 교육 등등에서 대한민국의 블랙홀이 되가고 있을 때 반대로 국토의 약 90%는 황무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작다고 말한다. 국토의 10%대만을 쓰는데 이 정도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부산 대구 울산 대전 광주 세종 등 광역시 혹은 자치시의 종합 면적은 4.4%) 나머지 국토를 제대로 쓰면 어떨까?

AI로 대변되는 미래 국가는 디지털 국가라고 하겠다. 이전의 아날로그시대에는 양으로 승부했다. 넓은 국토, 많은 인구, 풍부한 자원 등 양이 곧 질로 이어졌다. 넓은 국토에서 많은 산출이 일어나며 국부를 살찌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며 디지털이 대세가 됐다. 넓은 영토는 국방을 힘들게 하고, 많은 인구는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한다. 관리 가능하고, 적절한 인구가 오히려 강점이 되는 시대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전국이 사통팔달로 엮이며 G7은 물론 G2도 내다볼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큰 걸림돌이 지역 소외이다. 지방이 주역이 아니라 단역으로 취급되며 자원이 시혜 차원에서 투입되는 상황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지역을 수도권의 파트너로 보며 활성화시키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도권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의 하나는 서울 말고도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의 실례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서울만이 에베레스트처럼 우뚝 서있고, 다른 지방 도시들은 백두산이나 한라산 급으로 서 있는 형국이다. 다른 지방들도 서울 수준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시대 정신은 지방 활성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집중에서 지방 분산이라고도 하겠다.

현재 서울 보다 잘사는 곳이란 대안으로 가장 유력한 지역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을 비롯한 세종, 충북 청주 등의 충청권이다. 미래의 중심인 첨단 기술들이 여기서 탄생되고 있고, 우수 인력들이 밀집돼 있다. 서울에 비해 문화와 교육 등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미래 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이 지역과 함께 최근 엔젤협회와 전국 엔젤 투자 생태계 조사를 위해 둘러본 결과 지방 곳곳에서 미래 희망의 싹이 튼 실히 자라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특히 연구중심 대학이 있는 곳이 확실히 달랐다. 포스텍이 있는 포항, UNIST가 있는 울산, DGIST가 있는 대구, 거기에 GIST가 있는 광주가 미래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전을 비롯해 이들 지역들이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살펴보니 자본이었다. 기술과 인력은 현장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할 수 있었으나 자본은 내부 조달과 함께 외부 수혈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최근 대전과 광주에 엔젤 허브가 생겼다. 새로운 희망의 싹들이 자라나는 퇴비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엔젤허브에서 이뤄질 전문 엔젤 발굴 및 지역민 투자 창구 등의 일들은 돈 놓고 돈 먹는 머니 게임이 아니다. 지역을 발전시키고, 국가를 지속가능하게 하며 수익도 올리는 일석이조, 삼조의 일이다.

앞으로 서울 엔젤협회와 지역 허브는 5대 과기대학 연합 창업 경진대회, 지역엔젤 발굴, 투자 등등을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미 샌디에고의 커넥터 프로그램처럼 각 지역의 엔젤들이 활성화되며 지역의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엔젤투자는 국토의 90%를 제대로 활용하는 첫 걸음이다. 코로나로 대한민국을 재발견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전역은 정말 아름답다. 식민지, 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을 거치며 국토 곳곳에 쓰여진 스토리도 많다. 30년 뒤 지금의 MZ세대는 대한민국 전역에 흩어져 넓은 공간에서 자연을 벗하며, 풍요롭게 사는 미래를 상상해보자. 엔젤은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