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를 가면 한쪽 벽면에 쌓여 있던 조립식 완구 박스들이 기억이 난다. ‘철인 28호’, ‘달려라 번개호’ 등 당대 유명했던 TV 만화 드라마의 캐릭터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하루 종일 볼 수 있고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딱지치기, 오징어, 비석치기, 구슬놀이 말고 딱히 놀거리가 없어 궂은날에는 방에 박혀서 조립식 완구를 만들곤 했던 추억이 남아있다.
사실상 생활이 그리 녹녹지 않은 터라 취미활동으로 조립식 완구를 사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프라모델이라는 단어는 일반명사는 아니고 1959년 완구제조업체인 마루산상점에서 상표등록한 일본식 영어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 과학교사 출신이 설립한 아카데미과학사가 대표적인 프라모델 제조업체이다. 1980년대에는 100여 개 이상의 제조업체들이 있을 정도로 많은 호황을 누렸지만 변화의 파도 속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회사가 되었다.
조립하는 것만이 프라모델의 유일한 재미는 아니다. 실물을 고증하여 가능하면 똑같이 축소, 재현하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예술장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단순히 조립만 하는 차원을 넘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시작을 밟기로 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였다. 명절 때 친척집에 갔더니 대학생이던 형이 프라모델 장갑차를 에어브러쉬로 에나멜 도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신세계였다. 색을 입히니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조립품과는 다른 예술품이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고 전문적인 예술을 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장비를 구입했다. 도색을 하려면 에어브러쉬, 도료, 스프레이 부스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이라는 자체가 없었고 (10여 년 후에나 구글링을 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장비들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틈날 때마다 하나씩 만들면서 나름에 노하우를 갖게 되었지만, 동호회나 공방에 속해 있지 않으면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에 실력이 진일보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각종 온라인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방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입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비나 도료 구입도 빠르고 수월하여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취미로서 프라모델 제작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야 하는 사람 마음이지만, 이에 관련하여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좀 만든다고 하면 대개 조립 후 형태를 추가하고 다듬고 기교를 맘껏 부린 도색까지 완료한 경우를 말한다.
지방에서 중재시술을 하고 있었던 나는 남들이 많이 하고 있고, 추천하는 그 흔한 골프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물론 게을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인력이 많지 않아 언제 병원에 불려 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 시간 동안 여유롭게 라운딩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나만의 핑계다. 가족과 같이 살았을 때는 도료냄새와 소음 등 눈치를 보면서 프라모델링 작업을 했지만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는 아예 집에 공방을 차려놓고 본격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사진). 직장에서는 정적인 일만 하고 그나마 여유시간에도 운동이나 활동적인 취미보다는 더 정적인 일에 몰두하는 꼬락서니를 이해하는 가족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업무에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언제든지 부름을 거역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심장중재의로서 프라모델 제작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고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일단 도색을 위한 장비 구입과 기타 공구 구입을 위한 초기 투자만 생각한다면 지속하는 데는 유지비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 비교적 저렴한 취미라 할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하려면 일단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프라모델 장르는 전차 같은 군용 차량을 주로 만드는 밀리터리(AFV, armoured fighter vehicles)와 여객기나 전투기, 헬리콥터 등의 에어로 (Aero), 함선이나 배를 의미하는(Ship),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오토(Auto), 인물이나 인형을 의미하는 피규어(Figure), 그리고 스타워즈 등과 같이 현실에 없는 가상의 SF 등으로 구분되며 여기에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프라(건담+프라모델) 관련 장르까지 대개 6~7개의 큰 장르로 나눈다.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다양한 장르의 제품을 생산하는 곳도 있지만 하나의 장르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도 있다.
일단 플라스틱 틀에서 부품을 떼어내어 사포로 다듬고 조립하는 기본단계에서 이후에 더욱 발전하면 디테일 업이라고 해서 플라스틱 봉이나 판을 사용하여 없는 부품을 만들고, 각종 금속 파츠들을 사용하고, 가동성을 위해 관절을 아예 뜯어고치는 등 창조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의 만족도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실물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어야 한다. 요즈음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원하는 실물 사진을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정밀하게 축소 모형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큰 만족감과 쾌감을 느낀다. 시간의 흐름과 현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체가 외부에 노출되어 녹이 슬거나 닳은 표면 등을 재현하여 낡은 느낌을 입히는 웨더링, 도장의 까짐을 표현하는 치핑, 전체적인 색감을 변화시키는 필터링, 음각 부분에 도료가 고이게 하여 명암 대비를 높이는 워싱 등 수많은 기법들이 있고 일단 발들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분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웨더링을 할 때가 가장 기대되고 잘 되었을 때 만족감이 가장 크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디테일과 크기에 따라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나의 최근 작품은 2차 대전 당시 미군과 영국군이 사용했던 자주곡사포, 현재 자주곡사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M7 Priest 전차이다. M7의 기관총 자리가 마치 신부의 단상 같다 해서 붙인 별명이다(사진). 동내에 수 십 년을 지키던 아카데미과학사 매장이 주인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할머니가 매장정리 하시면서 무려 70% 이상 저렴하게 주셔서 이것저것 왕창 구매했다. 그 후에 직장을 옮기고 이사도 하고 해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올해 완성했다.
아직 수 십 개가 개봉도 하지 않고 작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웨더링 기법은 주로 피그먼트(고운 안료)를 사용하였고 차체는 세 종류의 유화물감으로 필터링을 했다. 페인트가 까진 느낌을 주는 기법인 치핑은 붓으로 하였다. 항상 그렇지만 완성하고 나서 보면 아쉽고 흠만 보이게 된다.
프라모델 제작 및 도색은 고요한 작업 속에서 예술적인 표현과 전문성을 결합한 흥미로운 취미 활동이고 파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취미이다. 비록 매우 정적이지만 정교한 손놀림을 통한 미세 손근육의 발달과 지속적인 창의적 발상을 자아내어 미니어처 세계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만족감을 제공하여 잠시나마 이승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를 피해 나만의 창의적인 세계를 만드는 취미로서만이 아니라 예술적인 도전과 기술적인 성취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