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시간의 자취

정성희(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전시를 열며

실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은 <달력, 시간의 자취> 공동기획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전통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달력의 역사를 살펴보고, 달력이 인간 사회에서 지닌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는 자리입니다.

‘달력’은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여 그 법칙을 깨달은 인간의 위대한 기록물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무한한 우주의 시공에도 일정한 주기와 규칙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앞날을 예측하고 생활에 활용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달력의 탄생과 활용의 변화상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소개합니다.

     1부 하늘의 기록_천체의 관측을 통한 시간의 인식과 달력의 탄생
     2부 책력의 시대_전통시대 달력인 책력의 의미와 일상에서의 활용
     3부 양력의 시대_양력달력의 등장과 달력의 대중화


이번 전시가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아나갈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1부. 하늘의 기록

예나 지금이나 시간은 인간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간과 날짜를 정확히 알려주는 달력이 필요했다.
인간은 하루와 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최초의 달력은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해 만들어졌다. 낮과 밤의 변화, 달이 차고 기우는 현상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하루, 한 달, 일 년의 시간을 알아냈다. 특히 태양과 달의 변화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시간의 척도로 사용됐다. 우리 조상들은 달의 주기를 기본으로 한 태음력과 태양의 운행을 기본으로 한 태양력을 모두 합한 ‘태음태양력’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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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 시간의 측정
인간은 천체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시간에 규칙성을 부여했다. 태양은 제일 먼저 인간이 시간을 인식하게 한 천체이다. 태양의 움직임으로 시간으로 재는 해시계는 인류가 제일 먼저 이용한 시간 측정 도구이다. 천문도는 별과 행성의 위치와 움직임을 기록한 지도이다. 천문도에 담긴 천체의 규칙은 하루[日], 한 달[月], 절기(節氣)가 되어 달력에 기록되었다.

 

img 1-b. 달력과 권력
20세기 전까지 달력을 만드는 권한은 국가에 있었다. 제왕의 절대 권력은 하늘로부터 나온다는 생각 때문에 하늘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지배자의 영역에 속했다.
중국이나 한국의 역대 왕조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나라에서는 천문학자를 고용하여 달력을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사용했다. 통일된 달력이 잘 사용되고 유지되는 것이 곧 중앙정부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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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책력의 시대

조선시대 달력은 특징에 따라 역서(曆書) 혹은 월력(月曆), 책력(冊曆)이라고 부른다. 특히 조선시대 달력은 책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책력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책력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열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경생활의 지침서로서 또는 길흉화복에 따른 일상의 지침서로서 활용되었다. 책력에는 월(月), 일(日)뿐 아니라 24절기와 예상 강수량, 풍·흉년 예측, 각종 길흉일 등이 적혀있다. 농경사회에서 24절기에 맞추어 제작된 책력은 요긴한 선물로서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 조선 전기에 1만부 정도 발행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30만부 이상 발행될 만큼 책력의 중요성은 시대가 갈수록 높아졌다.

2-a. 역법의 발전 역법이란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 삼아 달ㆍ날짜ㆍ시간 등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조선은 국가적으로 천문학을 중요시 하면서 세종(世宗, 1397~1450) 때 중국력인 수시력과 대통력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아가 조선의 위도에 맞는 새로운 역법을 고안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2-b. 대통력(大統曆) 중국 명나라의 역법인 대통력을 바탕으로 만든 달력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력이 처음 사용된 것은 조선 건국 이전인 1370년(공민왕 19)부터이다. 이후 1653년(효종 4)에 시헌력(時憲曆)으로 개력할 때까지 대통력은 283년간 조선의 공식 달력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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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580년 경진년 대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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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선생이 사용한 정유년 대통력

2-c. 시헌력(時憲曆)
잠곡 김육의 건의로 시행된 시헌력은 1654년부터 1896년까지 243년 동안 조선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역법이며, 이 역법에 의거하여 만든 달력이 시헌력[서]이다. 시헌력의 체계와 내용은 대통력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절기 계산법이 평기법(平氣法: 1년의 시간을 24로 균등하게 나누는 계산법, 한 절기의 기간이 약 15.218일)에서 정기법(定氣法: 황도를 15°씩 나누어 태양이 분점을 지날 때 절기가 바뀌는 계산법, 한 절기가 14.72~15.73일)으로 바뀌면서 절기의 시작일이 달라지는 변화가 있었다.

2-d. 다양한 책력
조선시대에는 신분과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달력을 만들었다. 궁궐에서 사용한 내용삼서(內用三書), 관청이나 양반들이 사용한 시헌서, 그 외 백중력(百中曆)과 천세력(千歲曆), 만세력(萬歲曆)과 같이 100여 년 단위의 달력, 그리고 칠정력(七政曆)과 같이 해와 달과 오행성의 위치를 계산해 놓은 천체력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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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년간에 발간된 천세력(다가올 100년간의 24절기의 시각이 예보되어 있는 달력이다.)

2-e. 농경생활과 책력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책력에는 72후(候)라고 하여 각 절기의 기후(氣候)와 그에 따른 생태변화인 물후(物候)가 묘사되어 있다. 백성들은 이를 기준으로 때를 예측하고 알맞은 시기에 농사를 지었다.

2-f. 책력 속 길흉일
옛날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좋은 때와 나쁜 때,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화(禍)와 복(福)도 들어오고 나가는 때가 있다고 믿었다. 혼사일이나 이삿날을 정하거나 집을 수리하거나 장 담그는 날도 손 없는 날과 손 없는 방향을 따지는 습관이 있었다. 달력에 기록된 ‘宜(의)’ ‘不宜(불의)’ 등의 역주(曆註)는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2-g. 책력 속 기념일
달력에 기념일을 적어두는 일은 조선시대부터 있어 왔다. 책력에는 왕과 왕비의 기일과 같은 국가적 주요 행사일을 기록한 경우가 많았다. 민간에서는 주로 조상의 제삿날이나 가족의 생일을 월별로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기록했다. 기념일을 표시한 달력은 1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차질 없이 해나가기 위한 일종의 계획표이다.

 

3부. 양력의 시대

1876년 개항이후, 외국과의 조약 체결이 빈번해지자 양력의 사용은 불가피했다. 조선은 1888년부터 일본과의 합의에 따라 외교문서에 청의 연호를 없애고 개국 기원과 양력을 사용하였다. 이어 1895년 음력 9월 9일에, 고종황제는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한 양력을 공포하였다. 달의 주기와 간지를 기반으로 하는 음력과 달리, 요일제를 근간으로 하는 양력은 ‘7일=1주일’이라는 낯선 시간의 주기를 안겨다 주었다. 음력보다 20여일 앞선 양력의 사용으로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했고, 월화수목금토일 7일=1주일이라는 주일의 시간 개념에 적응해야 했다. 관청에서는 양력으로 바꾼 새로운 달력이 배포되었다.
3-a. 대한제국과 명시력(明時曆)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大韓),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로써 천자국의 황제만이 내릴 수 있었던 책력을 반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제국에서 사용한 책력이 ‘명시력’이다. 명시력은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되었다. 명시력은 구성면에서 시헌력과 같으나 양력일과 요일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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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 양력의 강행
일제강점기에는 양력을 보다 강하게 시행했다.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장날을 음력이 아닌 양력에 맞추어 열도록 지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양력보다는 음력을 선호하였다. 양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양력설과 음력설을 이중으로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가 해방이후까지 지속될 만큼 강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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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 달력의 대중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가가 독점적으로 발행하던 달력이 민간의 손으로 넘어가자 기업이나 정치인의 홍보용으로 사용되면서 달력의 발행량과 종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달력이 점차 중요한 생활필수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달력은 시대마다 진화되어 오늘날 입체 달력이나 디지털 달력이 등장하는 등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