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혼돈한 세상에 외치다!

양상훈(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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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실학자료(번역)총서 『혼돈록(餛飩錄)』 (다산 정약용) 역주 출간

 

다산 선생은 일생동안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 중 『혼돈록(餛飩錄)』은 다산이 규장각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부터 유배시절에 이르기까지 수십년에 걸쳐 집필된 것으로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한 다산의 박학과 역사철학적 단상이 담긴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모두 4권이며, 내용은 크게 「사론(史論)」, 「시화(詩畵)」, 「언어·문자(言語文字)」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우선 「사론」에서는 주로 역사적 사실과 정의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 평론으로 이 부분이 전체 분량의 절반에 가깝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와 인물에 관련된 고실(故實)을 토대로 후세에 교훈이 될 만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정약용의 역사인식과 현실 비판정신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시화」, 「언어·문자」에서는 실학파 문학에 대한 평론과 어문(語文)에 대한 어원적 고증을 다루고 있다.

책제목 ‘혼돈餛飩’의 원 뜻은 ‘여러 가지 재료들을 혼합하여 빚은 만두’이다. 대다수 실학자들이 자신의 저술을 겸양적으로 표현한 제목을 주로 쓴 예에 비추어 볼 때, ‘생각나는 대로 적어 정리되지 않은 글’이라는 뜻으로‘혼돈(混沌)’과 음이 비슷한 ‘혼돈餛飩’을 대신 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잡록(雜錄)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단편적인 글을 적어나가다가 점차 글이 모이면서 백과전서적 형태로 엮어지게 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안정복의 『잡동산이』등 선배 실학자들의 백과전서학 및 고증학풍의 계보를 잇고 있다. 또한 이 책의 내용 중 상당수가 후에 《목민심서》,《아언각비》등에 다른 저술에 재인용되고 있어서 그의 저술의 원형을 파악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2009년에 개관한 실학박물관은 18세기 전후의 실학사상을 현재화·생활화하기 위해 전시·교육·연구 세 가지 방향에서 힘써 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후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신학풍의 출현과 그 내용 성격을 이해하고, 나아가 실학이 추구한 개혁과 문명지향의 정신을 오늘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가치모색의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실학박물관은 이것을 ‘신실학 운동’이라고 이름붙이고 전문적, 핵심적 역량을 투입하여 왔다. 그러나 실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시와 체험 교육이 주가 되고 연구는 이를 안받침하는데 우선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연히 실학자 인물, 주제 사상, 자료에 대한 연구가 확산되면서 그것을 정리해서 여러 가지 책자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가능한 연구물은 몇 가지 성격으로 묶어 ‘총서(叢書)’라 이름하기로 하였다. 우리 박물관이 기획 진행하고 있는 자료의 발굴, 정본 정리, 역주사업 몇 가지 가운데 그 첫 번째 결실로 다산 정약용의『혼돈록』을 「실학자료(번역)총서」 제1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이 다산선생과 실학의 연구에 시야를 넓혀주는 하나의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즐거운 독서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