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가 사랑한 수종사


글. 김형섭(학예사/문학박사)

 
- 역사 속 도미부부, 지역문화예술의 원류
- 경기도의 설화, 지역문화 재생 사업의 모델


 

다산 정약용 선생 태어나 자란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댐이 자리한 이곳에 우리의 흥미를 끄는 장면이 있다.
‘지혜야! 사랑해~~’ 등등 길게 뻗은 옹벽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써진 수많은 연인들의 ‘사랑 연서’가 펼쳐진다.
이 장면을 대하면서 우리는 오래된 내력을 떠올리게 된다. 도미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특히 이곳의 이름이 ‘도미진’이라서 더욱 주목된다.



 

‘도미는 백제 개루왕 시절 사람이다. 그의 부인은 절세미인으로 당대에 이름이 났었다. 개루왕은 그 부인을 탐하여 신하를 보내서 도미 부인을 꾀었으나 이를 눈치 챈 부인은 하녀를 대신 화장을 시키고 꾸며 시중들게 했다. 뒤에 개루왕은 자신이 기만당한 것을 알게 되었고 말도 안 되는 내기로 남편인 도미의 눈을 빼고 강에다 내다 버렸다. 그리고 도미의 부인을 궁궐로 잡아와 억압하여 간음하려 하였다. 이에 부인은 몸을 깨끗이 하고 오겠다며 둘러대고 개루왕을 속여 도망쳐 달아나다가 강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하게 되자 하늘에 부르짖으며 통곡하였다. 그런데 천우신조인지 갑자기 빈 배가 내려와 부인은 이 배를 타고 쫓아오는 군사를 따돌리고 살 수 있었다. 강을 따라 내려가던 부인은 풀뿌리를 캐어 먹고 살던 남편과 극적으로 만나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蒜山 밑에 이르러 살았다’라는 내용이다. 이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개루왕의 폭정과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고발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 속에 도미와 그 부인의 애정 스토리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도미와 그 부인이 험난한 인생 역정을 딛고 폭력과 폭압을 피해 사랑을 지키고 완성한 최종 종착지 ‘산산蒜山’은 어디일까? 현재 우리나라에 산산이라는 지명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남양주시 조안면에 ‘도미진’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미진' 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고 고구려 태조왕과 차대왕 때에는 고구려의 영토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팔당댐과 두미협이 있는 이곳은 얼마전 자전거길로 탈바꿈하여 유명해진 중앙선 폐철로가 뻗어있고 그를 따라 옹벽이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주목되는 곳은 바로 그 옹벽이다. 그 옹벽에는 낙서로 가득 차있다. 그 낙서들은 소위 연인들의 ‘사랑 고백’들이다.

 

“~야 사랑해”, “명희♡광희, 1주년 기념”, “~ 결혼해주세요!” 등등. 어떤 이들은 사랑을 시작하며, 어떤 이들은 첫 만남을 회상하며, 어떤 이들은 청혼하며 서약한다. 그 모양도 사랑하는 모양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글씨의 크기로 사랑크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도미와 그 부인이 사랑을 지키고 완성한 그곳에서 우리 시대 연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사랑을 고백하고 다짐하고,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마을에 살았던 다산은 결혼 60년을 맞아 ‘옛 님이 얼마나 좋은가, 이제 만난 사람 같네(其舊如之何, 匪今斯今)’라는 시를 짓고, 술잔에 새겨 부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요즈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은 문화로 사는 미래를 꿈꾸며 문화재생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로 폐산업시설이 대상이 되고 주목된다. 문화예술을 통해 정지된 기능을 다시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활용하여 복합문화의 생산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천 공단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성은 물론 지역민의 자부심과 관람객의 공감을 받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서울의 남산에는 ‘남산의 사랑 고백 열쇠’가 있어 연인들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크게 호응받고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원류를 찾지 못하고 지속성 역시 점치기 어렵다.

경기도의 문화재생사업과 마을재생사업은 경기도의 설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옛날이야기’ 속에는 되세겨 봄직한 것이 많다. 그 ‘옛날이야기’란 것은 착한사람이 복 받고 나쁜 사람은 벌 받는 소박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예전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문화적 연대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했다. 공동체 생활과 핵가족시대가 진행되면서 세대간·지역간 연대가 무너지고 우리는 그 옛날이야기들과도 멀어지고 잃어버리게 말았다. 얼마 후면 ‘칠석(7월 7일)’인데, 아주 먼 옛날 연인의 사랑 이야기 하나를 통해 경기도 마을을 재생하는 모델을 찾아보고자 한다. 도미 부부의 사랑이야기처럼 아직은 본격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경기도의 설화에는 주제의식과 함께 현대 우리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세기게 하고, 문화예술로 표현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현실인의 정감을 담을 수 있어서 마을 재생 사업의 좋은 아이템이며 자연스럽게 경기도만의 색채를 지니게 된다.

 
 

이제 경기도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경기도의, 경기도만, 경기도민이 자랑스러워 할 멋진 마을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의 첫 마을재생사업은 도미진에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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