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달의 서평

저자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책제목 :
<인생수업>출판사 : 문학동네

저자 : 필립 로스
책제목 :
<네메시스(Nemesis)>출판사 : 문학동네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온 호스피스 의사로 살면서 죽음에 대해서 연구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인생 수업(Life Lessons)』에 보면, 그녀는 인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들이 굉장히 다른 두 얼굴을 하고 온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인생이 우리에게 ‘돈의 가치’에 대해서 가르치고자 한다면 우리를 가난하게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부유한 상황에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생 수업의 주제가 ‘건강’이라면 우리는 아프게 될 수도 있지만 매우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퀴블러-로스의 핵심을 소설로 쓴 것과도 같다. 로스는 생존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을 주인공의 다른 두 얼굴로 동일하게 보여준다. 책 끝까지 한 번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주인공, ‘그’는 결혼을 했다가도 자기를 매료시키는 새로운 성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하곤 했다. 좋게 말해서 “느긋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어서 가족과 친구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관계에 홀려 떠났지, 적나라하게 말하면 “가족 해체가 그의 전공”이었다. 그러나 평생 태양의 냄새를 품은 소년이고자 했던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의 몸은 급속도로 쇠락하고 병들기 시작한다. 탈장수술과 충수염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관상동맥 수술, 신장 동맥 성형수술을 하고 왼쪽 경동맥마저 폐색된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처음에 막 아프기 시작해서 수술을 할 때만 해도 어머니가 곁에 있어주었고 마취에서 깨어나면 아버지가 보러 와주었다. 그러나 점차 수술이 반복될수록 그의 곁에 있어주던 두 번째 아내, 세 번째 아내와도 관계가 정리된다. 오로지 두 번째 아내에게서 낳은 딸인 낸시만이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옹색한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로스는 젊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망각, 늙어감, 나이듦, 죽음에 대한 이질감과 마주하게 된다.
로스가 주인공의 아버지 직업을 다이아몬드를 세공하고 파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가는 처지의 인간이 ‘불멸’이라는 꿈을 버리지 못해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주인공의 아버지는 포착했던 것이다.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죽음과 가난이라는 인간의 초라한 얼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이아몬드가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름 없는 주인공 ‘그’가 그의 형 하위에게 품는 감정이 반대로 치닫는 지점은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읽어내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공부와 운동 모두에서 월등하게 뛰어났던 주인공의 친형은 첫 사랑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형을 향해 주인공은 이제 격분하고 질투하며 미워한다. 형이 가지고 있는 삶의 활력이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폐색된 왼쪽 경동맥 수술을 마치고도 혼자 집에 차를 몰고 돌아와야 하는 처지의 주인공은 이제 더 이상 형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건강함과 병듦은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로스가 절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네메시스』 에서도 생의 활력 vs 병이 주는 공포와 죽음, 이 두 극단의 긴장은 반복된다. 어린 학생들이 사모해 마지않는 탄탄한 육체의 소유자이자 체육교사인 캔터가 일하는 곳이 있는 지역에서 소아마비가 돌기 시작한다. 햇빛이 한창 쏟아지던 한낮에도 뛰어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소아마비에 걸려서 병원에 격리되고 이윽고 죽는다. 아이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되 무리하게 생의 욕구가 위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 열정적인 캔터는, 결국 어느 순간 갑자기 압도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즉흥적으로 소아마비가 유행인 곳을 떠나 애인이 일하고 있는 안전한 지역의 캠프로 일터를 옮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의도치 않게 소아마비를 그곳에 퍼뜨리고 자기도 같은 원인으로 죽음에 이르고 만다. 『네메시스(저번 달 웹진의 책 리뷰)』의 체육교사 캔터도, 『에브리맨』의 ‘그’도 있음과 없음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다가 “있음에서 풀려나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 로스가 책의 제목과 주인공의 아버지가 했던 보석가게의 이름을 ‘에브리맨’ 으로 지은 의도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있음’의 옷을 입은 모든 사람들은 결국은 ‘없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것을. 글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치열했던 병과의 사투를 묘사하던 말투와는 다르게 죽음의 순간을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이었다고 묘사하면서 “있음에서 풀려났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애초에 ‘있음’은 ‘없음’을 껴안은 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