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연하장애학회

'집', 이 단어와 함께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 '집밥'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오면, 문을 열어젖힐 때보다 식구들과 익숙한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집밥을 먹고 나서야 진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굳이 오랜 여행이나 장기간 입원 생활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퇴근 길에 아내에게 저녁을 집에서 먹을지 이야기하고, 귀향길에 부모님께 점심식사 시간 전에 들어가는지를 말씀드리고, 명절마다 제사상을 차려 두고 조상님 앉아 드실 자리를 마련해두는 이 모든 일상에서 집(Home)과 식탁은 항상 하나이다. 가족(家族)과 함께 식구(食口)라는 말이 이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우리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도 가족에게 식탁은 중요한 공간인 것 같다. 가족에 관한 대표적인 소설, 도레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대가족을 위한 대저택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커다란 집이 수많은 방들로 나뉘어 있지만, 그 큰 집에도 식탁은 하나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식구들이 함께한 시간만큼 닳아 반질반질해진 커다란 식탁에 대한 묘사로 끝난다. 큰 집을 산 것은 큰 식탁을 놓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식탁에서 쫓겨난 다섯째 아이, 벤이다. 분명히 피가 섞인 가족이지만 식구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이방인이 되어버린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식탁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의 하얀 페이지 위로 영양음료 박스를 침대 옆에 쌓아두고 콧줄을 낀 채 멍하니 기대 누워 있는 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식들 모두 자기 식구를 만들어 집을 떠나 가고, 할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떠난 뒤, 강아지 한 마리만 식구로 남아있었다. 치매로 강아지 밥을 챙기기 어려워지고 자신의 식사도 준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역설적으로 떠났던 자녀들이 식구로 돌아왔다. 자녀들이 번갈아 가며 아버지 식사를 챙기러 집으로 오기 시작했고 삶은 하루하루 또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폐렴으로 입원했다. 다행히 열은 떨어졌지만 콧줄이 생겼다. 폐렴이 재발할 수 있으니 입으로는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식탁에 내 자리는 없어졌고, 뉴케어를 콧줄에 주입해주는 가족은 있어도, 함께 밥을 먹던 식구는 영영 사라졌다. 하루 세 끼로 가늠하던 일상은 사라졌고, 양치할 일이 없어진 입에서 나는 악취와 함께 곧 자식들은 할아버지를 돌보는 데 지쳐갈 것이다. 식탁이 없는 요양원 방 한 칸으로 옮겨질 터이고, 어느 날 곡 소리 나지 않는 장례식장에 앉은 누군가가 할아버지가 더이상 고통을 겪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며 '호상(好喪)'이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지역, 사회, 돌봄, 재택, 이 단어들의 개념적 정의나 조작적 정의를 내리고, 통합돌봄지원법과 재택의료제도의 정책적 취지를 옮겨 적는 대신 작가 도레스 레싱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먼저 늘어놓았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앞둔 지금 재택의료제도와 연하재활의 나아갈 방향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생명존중과 존엄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구름처럼 떠다니지도 않고, '삼킴곤란'이나 '흡인성 폐렴', '흡인에 의한 질식'이라는 의학적 진단명과 함께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꽃씨를 땅 위에 흩뿌리듯 손이 닿고 잘 보이는 곳에 ‘식사’라는 단어를 놓고 재택의료제도와 연하재활의 방향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재택의료센터에서 방문진료를 하던 때에 경험한 일이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식사를 전혀 못하시고 눈을 안 뜨신다며 집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바싹 마른 피부와 혓바닥을 보고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는 게 불편하다고 물을 드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전략이 성공했는지 이제 소변을 안 보신다고 한다. 혈액검사나 신체검진도 할 필요 없이 탈수증상이다. 근처 병원에서 며칠 수액을 맞고 이 할아버지는 다시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아마 그대로 돌아가셨다면, 자녀들은 스스로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배고프다는 말씀도 갈증이 난다는 말씀도 없이 그저 무표정하게 가만히 누워 계신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법하다.
또 한 번은 침대에서 나올 수 없어 방문진료를 요청한 할머니가 계셨다. 하루 종일 카스텔라 한 두개만 간신히 삼키기에 힘이 없어 도저히 침대에서 나올 수 없다 하셨다. 음식을 거의 넘기지 못한다는 말씀에 비해 목젖은 제법 움직였고 체중은 양호했다. 사실 아주 복잡하고 민감한 사정이 있었고, 그 할머니는 삼킴곤란 증상을 방패삼아 동거인으로부터 자기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어떻게 하면 이 사정을 풀어낼 수 있을지 상의하며 반지하 계단을 올라왔다.
통합돌봄지원법이 시행되면서 ‘의료-요양 통합돌봄 퇴원환자 연계 의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 요구도가 제일 높은 퇴원환자를 대상으로 통합돌봄 담당자가 재택의료와 돌봄을 연계하는 사업이다. 병원이 집으로 퇴원하는 환자를 지자체 담당자에게 의뢰할 때 환자평가표를 미리 작성해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 표에 반갑게도 "식사기능"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그 안에 "음식 씹는 기능"뿐만 아니라 "음식을 삼키는 기능" 문항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문항은 3지 선다형으로 "(1)삼키기 어렵다. (2)부드러운 음식을 잘 삼킨다. (3)어떤 음식이든지 잘 삼킨다."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덕분에 삼킴곤란이 있는 환자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하다가 흡인성 폐렴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콧줄을 갖고 퇴원하는 환자들도 많아질 것 같다.
지난 3월 3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콧줄 사용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다. "1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콧줄을 한 환자도 2022년 54명에서 지난해 362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기침할 힘도 없고 감각도 무디어져 실제로는 사레가 걸리는데도 모르고 있던 환자가 자주 조금씩 열이 난다고 방문 진료를 요청한다면, 재택의료의사는 집으로 영양제를 매일 주사하러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탈수와 영양실조 치료를 위한 쉽고 안전한 선택지인 콧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서 콧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의사로서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늘 생명 연장과 질병 치료를 우선하게 된다. 나의 행복과 나의 인간적인 생활보다 환자 진료와 일을 우선으로 두고 지내온 시간만큼, 환자의 행복이나 인간적인 생활은 덜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병원 밖 사회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헌법 제36조 3항에서 '보건'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제10조에서 '인간의 행복추구'가, 제34조에서 '인간다운 생활'이 먼저 나온다. 주변에 많이 보이기 시작한 콧줄이, 생명 연장이라는 보건 측면과 행복과 인간다운 생활 방해한다는 측면의 양면성을 가졌기에 주요일간지 단독보도를 통해 공론장에 등장한 것 같다.
하지만 '식구와 함께 식사하는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고민하고 연계하는 폭넓은 의미의 연하재활이 먼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제 역할을 찾아야 할 때이다. 섣불리 콧줄이 먼저 등장해 파괴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은 연하재활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의료와 돌봄이 집에서 만난다면 역시 사람처럼 식탁에 마주 앉아야 할 것이고, 연하재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식구처럼 지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