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9월 16일은 Andreas Gruentzig가 세계 최초로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 (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PCI)을 시행한 날이다. 우리에게 뇌성벽력과 같은 가르침을 준 그는 1985년 자가용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30년이 지난 2015년 우리는 그가 이룩한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중재심장학의 역사를 되돌아 보고 그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거인의 어깨에 앉아서 사물을 보면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뉴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1. 중재심장학의 역사
최초의 심도자술은 Claude Bernard가 말의 경정맥과 경동맥을 절개하여 우심실과 좌심실을 들어간 것이었다 (1844년). 인간에서 최초의 심도자술은 1929년 25세의 Werner Forssmann이 자신의 팔에서 우심실에 도자를 넣었던 것이다. 약물을 심장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현대 심도자술의 시작이다. 1940년대에 Cournand와 Richards Jr. 는 Forssman의 방법으로 우측 심장의 생리학을 연구하였다. 1950년에 Zimmerman 등이 척골동맥을 노출시키고 6 Fr. 도관을 삽입한 것이 좌심도자의 시작이다. 1953년 Seldinger는 혈관을 노출시키지 않고 경피적으로 혈관에 삽관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관상동맥 조영술의 시작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정립되었다 (Sones, Abrams, Judkins). 이때부터 임상과 병태생리의 상관관계에 관한 지식을 얻고 선천성과 후천성 심장병의 수술 (Baily, Harken)과 관상동맥 우회로수술 (Favaloro, Green)이 가능하게 된다. Forssmann의 최초의 의도대로 카테타를 치료에 사용한 것은 대혈관전위에서 심방 사이의 통로 만들기, 동맥관 개존증, 심방중격 결손증, 하대정맥 폐색술이며, 심박동기를 심거나 제세동기를 심는 데, 그리고 인슐린, 항암화학제, 항부정맥제의 주입 등이었다.
Dotter는 1964년 세계 최초로 죽상경화로 좁아진 다리의 동맥에 동축도자를 통과시켜 괴사되는 다리와 발을 구하여 경혈관 중재술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Forssmann과 Dotter는 찬사보다는 비웃음을 사고 버려졌다. Dotter의 방법을 계속하여 연구하고 시술한 Zeitler의 교육을 받은 Grüntzig는 1974년 Porstmann의 Latex Balloon Catheter를 변형하여 double lumen 카테타를 만들어 말초혈관을 뚫는데 쓴다. 그 후 이 카테타를 더 작게 만들었으며 개에 이어서 사람 사체에 실험하고, 다혈관질환으로 수술할 환자의 노출된 혈관에 실험하여 성공하였다. Grüntzig의 첫번째 비수술적 관상동맥 확장의 성공 (Zurich, Swiss,1977)은 좌전하행지의 근위부, 3 mm 길이, 80% 협착 병변에 대한 풍선확장술이다. 결과는 1977년 American Heart Association에서 발표되었다. 이 발표는 그때까지 혈관성형술을 연구하던 학자들의 세계에 아무런 시샘이 없는 큰 충격과 환호를 자아낸다. (환자는 성공적인 풍선확장술 이후 흉통 없이 잘 지냈고 이후 관상동맥 혈관성형술 10주년 기념으로 그가 마지막으로 봉사했던 에모리 대학에서 추적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였는데 10년 전에 시술하였던 좌전하행지는 다시 좁아지지 않고 거의 완전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서 관상동맥 중재술은 독일 (Kaltenbach, Kober, Frankfurt), 미국 (Myler, San Francisco; Stertzer, New York, 1978.3.)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978년에는 온 세계의 관심 있는 사람들을 Zurich에 모아서 그가 시술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생중계한다. Grüntzig의 이런 노력, 그의 재주, 용기, 정직함에 힘입어 관상동맥 중재술은 전례 없이 빠르게 확산되어 발전된다. 학자들의 열정을 불러와 이 시술이 매우 중요한 심장학 치료술이 되며 지금까지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또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할만한 일화는 당시 미국의 SB King Ⅲ는 젊은 그를 Emory 대학으로 모셔 와서 자기 대신 chairman으로 모신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화이다. 아름다운 그곳이 그의 최후의 일자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미국의 NHLBI(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는 1979년에 73개의 심혈관성형술 시술 기관들이, 연구비도 스스로 내는 자발적인 등록사업을 시작하여 그들의 경험을 모두가 함께 나눈다. 아름답다.
1977-1979년의 초창기 장비나 도구들은 오늘날의 우리 눈으로 보면 원시적이다. 유도 카테타는 9.4 Fr. Teflon 이었고, memory도 torque도 나빴다. 그 뒤에 카테타의 재질, 설계가 발달 개선된다. 이어서 풍선도자, 유도철선의 발달이 시술의 성공률과 합병증을 개선하고, 영상기술 (혈관조영술, 관혈관 초음파도, 혈관경)과 생리적평가방법들 FFR등)의 진보는 시술 전후의 평가를 향상시킨다. 시술의 적응증은 초창기에는 단일혈관병, 근위부, 짧은 동심성 병변이면서 석회침착이 없고, 안정협심증이고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은, 우회로수술 적응되는 환자이었으나 카테타, 유도철선, 풍선도자의 재질과 설계가 발전하고 병태생리의 이해와 시술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병변의 수나 형태와 위치, 심근경색, 불안정협심증, 심근경색에 동반한 심인성 쇼크, 오래된 완전폐색, 우회로술 후의 정맥이식편이나 동맥이식편의 협착에 이르기까지 모든 임상표현이나 병리형태에 적응되고 있다. 이런 발전의 바탕에는 처음 시작한 거인들의 사심 없이 솔직한 열정을 본받은 상호 교환과 격려의 전통이 계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문제점은 있다. 뚫을 수 없는 병변, 시술도중의 급성 폐색, 시간이 지난 뒤의 재협착 등은 옛날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계적 도구와 약리-생리학적인 지식의 발전과 시술경험의 축적으로 어디까지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꾸준하게 향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상동맥 스텐트가 개발되고 (Puel, Sigwart, 1986) 발전하여 지금은 각종 약물방출 스텐트가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약리학의 발전으로 항응고, 항염증제와 항혈소판제, 혈전용해제, 세포의 증식과 성장억제제 등 지금까지 개발된 약물이나 유전학적인 지식이 문제점들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Polymer 스텐트나 혈관 micro-robbot의 개발도 한 희망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이룩한 일에는 늘 새로운 문제점들이 수반되었던 경험에 비추어 병리의 자연현상을 우리 힘으로 얼마나 수식할 수 있을런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PCI 이외의 심혈관중재술도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Implantable Cardioverter-Defibrillator (ICD), 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 (LVAD), Wireless Remote Monitoring을 위한 Implantable Device, Mitral-Clip, Transcatheter Aortic Valve Replacement (TAVR) 등이 임상에 사용되고 있다.
2. 국내 중재심장학의 역사
1983년 연세대학교팀(이웅구, 조승연, 심원흠)이 관상동맥 풍선성형술에 성공한 이래 빠르게 확산되었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시술생중계 나눔의 자리가 크게 기여했다. 1992년 관상동맥스텐트 시술이 시작됐다. 관상동맥환자가 증가한 것은 반갑지 않으나 PCI는 보편화 되었다. 세계 곳곳의 학자들과 상호 교류 교환하고 있다. 이 교류-교환은 성실한 보답이어야 한다.
3. 중재심장학의 미래
아직도 한계와 우려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전한 대단한 여정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빚진 수많은 거인들의 천재적이고 끈질긴, 성실한 노력들과 그들이 받았던 비난, 질시, 고민, 찬탄들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우리 세대나 따라오는 세대들이 잊지 않고 자신들의 일터에서 일하면서 환자에 대한 연민과 편견 없는 마음으로 기계적 개통술과 약리학적인 중재술, 동반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협동, 겸허함, 정직, 공유, 교학상장의 마음들을 가진다면 중재 심장학, 의학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림 1. 1977년 9월 16일 Andreas Grüntzig에 의한 세계 최초의 관상동맥 풍선확장술 및 추적 관상동맥 조영술 사진.
(a) 시술 전 근위부 좌전하행지 협착, (b) 관상동맥 풍선확장술 직후,
(C) 관상동맥 풍선확장술 10년 후, (d) 관상동맥 풍선확장술 23년 후
(Circulation. 2000;102:IV-81–IV-86.)

그림 2. Participants in the August 1981 course on Percutaneous Transluminal
Coronary Angioplasty given at Emory University in Atl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