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주제이다. 한때 음악 전공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참 좋아했다.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바이올린이다. 광주 S초등학교 관현악반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만난 이후, 광주 J고와 전남의대에서도 관현악반 활동을 하며 바이올린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대학 시절 연주회 도중 현이 끊어졌던 기억, 술에 취해 광주 천변 다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결국 음악 아닌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어릴 때 우연히 만난 바이올린을 지금도 곁에 두고 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인생의 한 축이 음악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바로 심장이다. 나는 지난 30여 년간 심장을 치료하고 연구해 온 심장내과 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늘 강조해 온 것이 바로 ‘감성과 이성의 공존’인데 ‘바이올린’이 감성의 상징이라면 ‘심장’은 이성의 상징인 셈이다. 이처럼 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바이올린과 심장은 과연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을까? 바이올린은 심장에 좋은 영향을 줄까?
우선 연주 자세를 살펴보자. 사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땐 몸이 썩 불편하다. 전문 연주자들에게는 이미 일상화된 자세여서 편할지도 모르겠으나, 교회 성가대 관현악 반주대원으로 활동하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주하는 나로서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직도 연주할 때마다 몸을 몇 차례 들썩일 정도이니 말이다. 전문 연주자들은 긴 연주 시작 전후에 스트레칭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스트레스 문제도 있다. 바이올린은 4개의 현을 이용한 악기로, 현을 손가락으로 누를 때 기타처럼 지판 마크가 있지 않아 연주자의 정확한 음감이 필수적이다. 시작 자체도 쉽지 않지만 오랫동안 연습해도 음이 부정확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여러 관악기를 비롯해 피아노, 다른 현악기와 합주를 하며 소리를 순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기도 하지만 결국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아 만족하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왼손가락을 사용하여 자극을 받기 때문에 우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 해도,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바이올린 연주가 심장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내가 전공한 분야인 관상동맥 등 동맥경화증에는 어떨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악기 턱받침을 왼쪽 턱으로 지지하는데, 이 때문에 왼쪽 목 주위를 지나는 경동맥이 눌려 혈류의 흐름을 방해하고 동맥경화반이 생겨 협착 소견을 보일 수 있다는 재미있는 보고를 읽은 적이 있다 (왼손잡이 바이올리니스트도 아주 드물지만 있습니다. 이분은 오른쪽 경동맥이!). 여기까지 살펴보니 바이올린 연주가 오히려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음악과 치유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에서 스트레스 해소, 수면 유도, 통증 경감 등 질병의 치료를 위해 음악을 사용하였으며 고대 아메리카,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노래, 찬송 등을 치료에 활용하였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입증된 서양의학이 주류가 되고, 약물, 시술, 수술 등이 가장 중요한 치료 수단이 되면서 예술적인 행위를 통한 치료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음악이 알츠하이머, 만성통증 증후군, 약물중독 질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관심이 일기 시작하였다. 심장도 예외가 아닌데 현재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음악이 심혈관계에 미치는 효과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음악을 통해 혈압을 낮추고 맥박을 천천히 뛰게 할 수 있으며 특히 심장마비 생존자들의 불안감, 통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쁨과 쉼을 주는 음악을 들었을 때 혈류량이 증가한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물론 수만 가지의 음악이 모두 똑같은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음악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각각의 음악이 끼치는 영향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평온을 주는 Debussy의 “Clair de Lune”, George Winston의 “Moon”, 다소 시끄러운 Meredith Wilson의 “musical The Music Man - Seventy Six Trombones” 나 Puccini의 “Nessun Dorma”가 같을 수는 없다. 개인적인 편차도 존재한다.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입맛에 맞는 와인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평온을 주는 음악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만약 음악을 약물처럼 객관화할 수 있다면 음악 치료도 심혈관계의 치료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세계 어딘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음악 그 자체가 좋다. 어린 시절 내 심장을 뛰게 했던 음악들은, 환갑을 앞둔 지금의 나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클래식도 여전히 좋지만 최근 유행했던 미스·미스터트롯의 경쾌한 가락들도 인상 깊다. 나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음악도 하나의 치료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 차례 있는 바이올린 연주가 내 심장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그림 1] 미국 하바드의대 연수 중 (2000-2002년) 연구책임자인 토니 선생님 댁에서 연주. 피아노 연주자는 토니 선생님 부인. 앞에서 보고 있는 친구는 현재 일본 지케이의대교수이며 이때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처음 보았다.
[그림 2] 2017년 병원로비에서 병원 구성원등과 크리스마스 축하공연을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