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1 No.3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JULY 2025
Life Style: Culture & Hobby

‘악마의 와인’ 샴페인


최현희  |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샴페인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기는 하지만 샴페인이 취미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이런 주제로 글을 써도 되는지 걱정이 되어 취미라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취미(趣味, hobby)는 인간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로써 일반적으로 여가에 즐길 수 있는 정기적인 활동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라면 샴페인은 나의 취미인 것 같다. 예전에 사 놓은 샴페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이 시기에 언제 팔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언제 마실지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 글을 통해서 나에게 있어 샴페인은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혹시라도 샴페인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나의 미흡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그 땅의 포도만을 사용하여 까다로운 전통 제조방식으로 제조된 스파클링 와인이다. 같은 프랑스에서 만들었어도 지역이 다르거나 제조 방식을 지키지 않으면 크레망, 제조국에 따라 까바(스페인), 젝트(독일), 프로세코(이탈리아), 아스티(이탈리아)라는 고유 명칭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명칭이 없다면 그냥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한다. 샴페인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16~17세기 샹파뉴 지역은 원래 부르고뉴와 더불어 고급 스틸 와인의 산지였으나 겨울에 기온이 낮아서 와인 병 속의 발효 과정이 멈추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고 기온이 올라가면 발효과정이 다시 진행되면서 이산화탄소 기포가 발생되고 병 속에 갇힌 기포들의 압력이 높아져 와인병이 갑자기 터지는 일들이 생기면서 ‘악마의 와인’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샴페인의 가격들이 점점 사악해지고 있어 ‘악마의 와인’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첫 샴페인은 뵈브 클리코의 시그니처 엘로우 레이블이었는데 우연히 선물로 받은 이 샴페인을 해산물과 함께 마셨고 달지 않으면서 입안에서 작은 기포가 풍성하게 오래 지속되고 풍미가 다채로워서 해산물의 맛을 한층 더 올려 주는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다. 뵈브 클리코는 미망인 클리코라는 뜻으로 26세에 미망인이 된 클리코가 시아버지의 샴페인 하우스를 물려 받아 1772년 설립한 샴페인 하우스브랜드이다. 클리코는 샴페인 제조과정에서 발생된 효모 침전물을 병입구로 모으는 르뮈아주(Remuage)과정과, 찌꺼기가 모인 병입구를 급속 냉동한 뒤 죽은 효모찌꺼기를 제거하는 데고르주망(Degorgement)과정을 개발하여 지금과 같이 맑고 투명한 샴페인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고 상류 사회에 샴페인을 유행시켰다. 데고르주망 때 손실된 샴페인은 화이트 와인과 당분을 섞어 보충해 주는 도자주(Dosage)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당분의 양에 따라 샴페인이 드라이하거나 스위트해진다. 1L 당 사용되는 당분의 양에 따라 nature dosage zero(<3g), extra brut(<6g), brut(<15g), extra sec(12~20g), sec(17~35g), doux(>50g)으로 구분하고 샴페인 레이블을 살펴보면 데고르주망 연도와 도자주 양이 적혀 있다.

샴페인 하우스의 유형을 나타내는 코드인 NM(Négociant Manipulant)은 상인 겸 제조자라는 의미로 다양한 곳에서 구입한 포도를 혼합해서 일관된 스타일과 품질의 샴페인을 대량으로 만들며 대부분의 대형 샴페인 브랜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RM(Récoltant Manipulant)은 수확자 겸 제조자라는 의미로 샴페인을 만드는 양조자가 자신의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만을 사용해서 샴페인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대부분 소규모 생산이고, 해당 지역의 특색과 양조자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강하게 반영된다. NM 샴페인이 일관된 품질과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면 RM 샴페인은 더 개인적이고 독특한 맛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샴페인은 자크 셀로스의 서브스탄스이다. 10여년전 단골 와인매장에서 소개받은 첫 RM 제품이었고 자크 셀로스라는 사람이 1959년에 설립하고 현재는 아들인 앙셀름 셀로스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에서 샤도네이로만 만든 샴페인이라고 해서 구입해 보았는데 처음 마셨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진한 골드 컬러에 스모키하고 짙은 과일향의 아로마가 강하게 풍기면서 산미와 신선함이 함께 공존하는 강렬한 맛이 그전까지 마셨던 샴페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이 샴페인이라면 언제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돔 페리뇽 빈티지 가격과 비슷했는데 지금은 3배이상 가격이 뛰기도 했고 구하기도 어려워서 아쉽게도 2년 전 생일 이후 마지막 남은 한 병을 고이 모셔두고 있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프랑스 아비즈 지역에서 셀로스가 운영하는 호텔에 투숙해서 와이너리 투어도 하고 자끄 셀로스의 샴페인을 앙셀름 셀로스와 마셔보는 것이다.

비싼 와인이나 샴페인을 오픈하고 한번에 다 마시지 못해서 보관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와인전용 세이버인 코라빈(CORAVIN)을 추천한다. 의료용 주사바늘을 사용해 코르크를 제거하지 않고도 와인을 추출하고 추출된 와인만큼 순수 질소 가스를 추가해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드는 원리로 특히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 와인에서의 장점이 더 크다. 탄산이 있는 와인을 보존하는 것이 일반 와인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 왜 세이버가 필요한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가끔은 나도 한 잔 정도만 마시고 싶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샴페인은, 나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고, 내게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친구였고, 앞으로도 의미 있는 순간들을 함께 하고 싶고, 좀 더 잘 알고 싶은 대상인 것 같다. 아직 마셔보지 못한, 마시고 싶은 많은 샴페인들을 위해 중증 무기력증 환자인 나는 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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