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달의 특집 : 여행
방영희 한약사 :
저는 첫 여행을 구호활동으로 시작했습니다. 2005년 파키스탄 북부 캐쉬미르 지역에서 리히터 지진 규모 7.6의 대지진이 있었어요. 7만 5천명이 죽고, 10만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당시 21살이던 저는 그동안 평온하게 유지되던 제 세계의 균열을 느꼈습니다. 인생이 자연재해로 인해 갑자기 이렇게 끝나기도 하는구나,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참사에 비해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파키스탄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알아보다가,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힘들어하거나, 가족을 잃고 혼자 된 아이들을 돌보는 child care team에 지원하게 되어 파키스탄 무자파라바드 지역에 투입되었고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의 6개월 구호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새벽 한 아이가 우리 캠프로 찾아왔습니다. 신문으로 돌돌 말린 선물을 주고는 저를 안아주고 수줍게 뛰어갔습니다. 캠프를 떠나고 버스 안에서 신문을 펼쳐보니 그 아이가 난민캠프에서 배급받은 하루치 식량과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장갑이었습니다. 선물을 부여안고 버스에서 내내 울었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겪은 것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겠다고 신문꾸러미를 주고 간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짐했습니다.
이듬해 2006년 여름은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일어났던 족자카르타 지역에서의 2개월간 구호활동하면서 보냈습니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지역들은 지역 간의 갈등으로 인해 다툼이 고조에 이른 상태였는데 거기에 자연재해까지 더해져서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운 좋게 만나서, 쓰나미 재해복구도 돕고 마을간 화해를 돕는 평화이벤트에도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에서 지진, 쓰나미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나니 내가 태어난 세기, 내가 태어난 이 아시아라는 지역이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중국/티베트, 네팔,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싱가폴, 인도네시아, 호주 등 60리터 배낭하나 둘러메고 발길 닿는 대로 다녔습니다.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많은 마을을 만나면 그 마을의 제일 나이가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후에, 마을에서 재워주시면 농사도 돕고 가축도 치고 다 하겠다는 아양을 부렸습니다. 그러면 마을의 인심 좋은 가정집에 재워주시곤 했습니다. 캄보디아의 프놈 끄라움(Phnom Kroum) 마을에서 한 달 동안 지내다가 마지막 날 하룻밤만 묵게 된 5남매의 집은 매우 허름했습니다. 우리는 밤새 서로 이야기하고 장난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습니다. 새벽에 비가 와서 추워서 깼는데, 문득 아이들을 보니 나 빼고 다 비에 젖어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이 내게 양보한 자리는 유일하게 그 집에서 비가 안 새는 누울 자리였던 것입니다.
아시아를 구석구석 여행하면서 나보다 어리고 연약하고 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값없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다짐했습니다. 소유보다는, 존재에 인생을 걸자고요. 하나라도 더 갖고 쌓으려고 하지 말고, 관계 맺으며 후회 없이 사랑하면서 인생을 보내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