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0 No.1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JANUARY 2024
Life Style: Culture & Hobby

중년 순환기 내과 의사의 피겨스케이트 승급시험 도전기


신상훈  |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처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부인과 연애를 할 때 함께 하얏트에서 스케이트를 빌려서 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나 뿐만 아니라 부인도 스케이트를 거의 타보지 않았던지라 옆에 안전바를 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한바퀴만이라도 제대로 돌기 위해 안간힘을 다 썼었다. 그리고 한두바퀴를 돌고 나면 서로 발이 너무 아프지 않냐면서 앉아서 한참을 쉬고나서야 겨우 다시 한두 바퀴를 돌 수 있었다. 하지만 하얏트 호텔 아이스링크의 화려한 조명이나 머쉬멜로우를 띄운 따뜻한 핫초코 만으로도 스케이트 부츠를 신고 아이스링크를 오르는 수고를 할만하였다. (물론 가격은 사악했다)
잘 타지는 못하지만 아이스링크를 좋아하는 부부의 딸도 마찬가지로 얼음판 위를 좋아했다. 다만 옆에 엄마나 아빠를 꼭 잡아야지만 링크 위를 달렸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면 가족 모두 넘어진 상태로 서로를 잡고 일어났다가 다시 넘어졌다가 하는 진풍경이 생기기도 했다. 아이가 혼자서 한바퀴라도 돌게 하기 위해서 한바퀴를 제대로 혼자 돌면 스케이트 부츠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혼자서 한바퀴를 돌았다. 사실 빌리는 부츠 보다 개인이 구매한 스케이트가 훨씬 예쁘기 때문에 결국 아이에게 스케이트 부츠를 사주면서 부인과 나도 같이 구매를 하게 되었다. (figure – 내 스케이트)

본격적으로 스케이트 강습을 받게 된 것은 부인이 이대서울병원으로 오고도 한참 지난 뒤였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운동을 하기 위해서 PT도 같이 받아보고, 필라테스도 함께 다니면서 개인 레슨을 받아 봤지만 어느 하나 재미를 붙이고 꾸준하게 하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이런 운동들이 재미가 없었던 까닥에 그냥 우리가 재미있을 것을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운동이 많이 안되도 상관없으니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과 함께 가까이에 목동 아이스링크가 있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피겨 스케이트라고 하면 김연아 선수가 벤쿠버 올림픽에서 제임스본드 노래에 맞춰 얼음판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상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사실 가벼운 유산소 운동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해보니 실제로는 몸무게를 대부분 한쪽 다리에 그것도 스케이트 칼날 위에서 지탱하면서 인엣지와 아웃엣지를 바꿔가면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에 지속적으로 힘을 줘야 한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균형을 잃어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코어 근육에 지속적인 자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재시술을 하는 순환기 내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허벅지와 엉덩이 그리고 코어 근육을 키워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 꽤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덤으로 처음 배울 때는 한발로 서는 것조차 힘든 상태에서 점점 앞,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비슷하게 나마 흉내를 내게 되는 것도 좋았다.

d1_1.jpg

아이스링크장에 스케이트 부츠를 신고 있으면 아이들을 스케이트 강습을 시켜 놓고 관람석에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1시간 정도를 얼음이 얼어있는 아이스링크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니 롱패딩에 담요가 이 부모님들에게는 필수품인듯 보였다. 당연하게도 아이스링크장에 강습을 받고 있는 학생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밖에 앉아 있는 부모님들 중에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처음 우리의 개인 강습을 맡아 주신 이동원 코치님은 스케이트를 타고 한발로 서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를 연습 시키시느라 참 많이 고생하셨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뒤에는 선수들에게 집중을 하면서 일반 개인 강습을 중단하시면서 지금 신예지 코치님이 우리를 담당하고 계신다.
그렇게 1년 반을 넘게 남들에게 말하면 조금 부끄러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 중에 신예지 코치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상훈씨랑 예현씨는 왜 승급시험을 안봐요?“
우리 부부는 마주 보고 눈만 깜빡 거리고 있었다. 사실 승급시험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케이트 꿈나무들이 대회를 나가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이에 뭔가 또 시험을 본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직 잘 못하는데 승급시험을 볼 수 있나 싶기도 했다.
“꼭 봐야 하는 건가요? 저희는 그냥 취미 생활이라 굳이 안해도 상관은 없는데…”
“꼭 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다음 진도를 나가려면 승급시험을 해 놓는게 좋은데..”
“그럼 다른 지역에 가서 치는 것은 어려우니 여기서 하면 그 때 한 번 해볼께요.”
그런 대화가 오간지 한 2달 쯤 지난 뒤에 코치님이 11월 5일에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승급시험이 있으니 그 시험은 치자고 했다. 해야할 과제는 반원을 바깥쪽 엣지, 안쪽 엣지를 사용해 가며 앞/뒤로 가는 것, 그리고 크로스 (발을 바꾸는 것) 좌우앞뒤로 하는 것이었다. 막상 한다고 해 놓고 보니 괜히 하기로 했다는 후회가 몰려 왔다. 안해도 되는 시험을 만들어서 치게 되었고 뒤로 인엣지로 가는 것(백-인, back-in)에서 매번 버벅거리고 있어서 자신도 별로 없었다.
승급시험 2일전에 마지막 점검을 위해 연습을 할 때도 다른것은 그래도 왠만큼 할 수 있는데 백-인이 여전히 잘 안되었다. 뭐 될대로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승급시험 아침. 아침까지 당직을 선 부인과 함께 10시 시험이지만 9시 30분까지는 꼭 오라는 코치님의 신신당부에 따라 9시 조금 넘는 시간에 스케이트장에 도착했다. 우리 기준에는 아주 일찍 온 것이지만 이미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평소와 다르게 스케이트 끈도 강하게 묶었더니 발이 조이는 것이 더 심했고 긴장한 탓인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서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준비 운동을 위해서 걸었던 운동장 한바퀴가 오히려 허벅지에 힘이 더 들어가게 한 것만 같았다. 여러 명이 한줄로 서서 연습을 하는 것이라 연습도 많이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히 첫 조에 포함되어 있어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처음 포-인 (forward, in-edge)에서 부터 불안했다. 가볍게 하던 것이 이름이 불리고 심사위원 3명 앞에서 자세를 잡아가며 하니 왜이렇게 흔들리는지..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은데 몸은 그게 아닌가보다. 겨우 넘기고 다음 포-아웃 (forward, out-edge)을 하고 나니 코치님이 다가오셔서
“한 번에 출발하셔야 해요. 두번 자세 잡지 말고요..“
하고 속삭이듯이 말씀하셨다. 출발할 때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아 한 번 더 자세를 잡는다는 것이 두번 움직인 것으로 되었나보다. 뭐 그걸로 떨어지겠나 싶었지만 문제는 백-인에서 결국 벌어졌다. 처음 두 반원을 지나오는 동안 자세가 무너져서 두 발로 짚고 만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반원을 겨우겨우 끝냈다. 코치님은 ’상훈씨 백-인 때문에 좀 불안해요.‘ 하시면서 걱정을 하셨다. 이 때부턴 기분은 좀 안좋았지만 마음은 편해졌다고 해야하나. 이번 시험에 꼭 붙어야 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학회 칼럼에 쓸 말이 좀 없어 지겠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다음 과제인 크로스는 2명이 8자 모양의 원 두개를 따라 돌게 되는데 나는 먼저 출발했음에도 뒤에 들어온 아이가 너무 빨라 마지막에는 거의 같이 끝나는 모양이 되었다. 한 조가 시험을 끝내는데 한 50분쯤 걸린 것 같다. 원래는 합격 여부를 기다렸다가 듣고 합격증을 받아오는 건데 코치님이 따로 연락을 주신다고 해서 그냥 집으로 출발했다. 붙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면 기다렸다가 받는 것이 좋았겠지만, 확실하지도 않고 거기서 떨어진 것을 확인하면 그것도 기분이 별로일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후에 부인에게 온 문자에는 2명 모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부인 말대로 최고령자 우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떨어진 것 보다는 붙는 게 더 기분은 좋았다. 겨우 초급 패스고 점프와 스핀을 조금씩 연습하고 있는 정도 수준이지만 꾸준하게 하다보면 조금은 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점프만 하지 않는다면 관절에 전혀 무리가 없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한다. 언젠간 부인과 함께 안무를 짜거나 대관을 해서 자유롭게 링크를 달리는 상상을 하면서 앞으로도 쭉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