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2 No.2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APRIL 2026
Life Style: Culture & Hobby

테니스라는 오래된 벗


안정민  |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테니스를 이야기하면 지난 20년은 단연 ‘Big 4’의 시대였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그리고 앤디 머레이 — 내가 좋아하는 순서이기도 하다. 이 네 명이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돌려가며 들어 올리던 황금기가 있었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이들의 전성기를 지나가게 했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두 강자가 등장했다.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야닉 시너다. 2025년 프랑스 오픈 결승은 이 둘의 성대한 대관식 같았다. 로마 시대 장군처럼 보이는 알카라스와, 신중하고 차분한 장신의 시너. 필리프 샤트리에 센터코트에서 두 선수는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라켓을 휘두르며 한 포인트 한 포인트를 쌓아 올렸다. 젊음과 강인함이 코트 위에서 불꽃을 튀겼다. 5시간 29분 — 롤랑가로스 역사상 가장 긴 결승이 끝났을 때, 누가 이겼는지 보다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이 앞으로 20년을 지배하겠구나.’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거실에서 라켓을 들고 부—웅 스윙을 해봤다. 아, 테니스 치고 싶다.

1995년 여름, 의과대학에 합격한 그해 첫 방학이었다. 친척 어르신이 쓰시던 낡은 프린스 라켓을 들고 대구의 한 테니스 코트에서 처음 레슨을 받았다. 왜 하필 테니스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대학에 가면 테니스를 배워야지”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테니스가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인턴과 레지던트의 고된 수련 기간, 전임의를 거쳐 교수가 되기까지 라켓을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구력 30년’이라고 하면 꽤 잘 칠 것 같지만, 실력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그래도 꾸준히 라켓을 잡아왔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기로 했다. 때로는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치지 못한 시기도 있었지만, 테니스는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오래된 벗 같은 존재였다.

왜 많은 운동 중 테니스냐고 묻는다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짧은 시간에도 운동량이 충분하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한두 시간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사람들은 “15~20분 레슨에 무슨 운동이 되겠냐”고 말하지만, 코치가 마음만 먹으면 그 짧은 시간에도 토할 것 같은 운동량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적당한 승부욕을 자극한다. 한 포인트를 두고 벌이는 공방은 단순한 체력 소모 이상의 짜릿함을 준다. 꼭 따야 하는 포인트를 집중해서 따냈을 때의 기분은 — 오래 헤매던 CTO wiring을 성공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니스는 지루하지 않다. 솔직히 나는 러닝이나 헬스 같은 반복 운동을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테니스는 날아오는 공을 쫓고 상대의 수를 읽으며 라켓으로 답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게임이다. 그래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 것도 테니스를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서브는 30년째 제자리, 발리는 눈물 나는 수준. 포핸드는 그나마 봐줄 만하여 모든 공을 포핸드로 돌아 치고 있었지만 이제 체력이 달려 작년부터 백핸드를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테니스가 몸에 좋다는 것은 굳이 논문을 찾아보지 않아도 코트에 나가 보면 알 수 있다. 한 시간만 뛰어도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전신을 고르게 사용하게 된다. 하루 종일 시술실에서 납 가운을 입고 서 있다가 코트에 나서면 묵직하던 어깨가 풀리고 굳어 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더 고마운 것은 마음이다. 테니스를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과장이 아니다. 한 포인트에 집중하다 보면 환자 걱정도, 내일 시술 스케줄도 잠시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복식 경기에서 파트너와 눈빛을 맞추고, 경기 후 상대와 웃으며 악수하는 시간 속에서 병원 밖의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여러 연구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다른 스포츠보다 기대 수명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물론 confounding이 많겠지만). 테니스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같이 치는 재미’, 즉 사회적 상호작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 살려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치다 보니 오래 산다는 뜻이니 이보다 좋은 핑계가 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테니스 구력에 비례해 늘어난 나의 몸무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가끔 치는 테니스 덕분이 아닐까 한다.

올해 3월 1일, 나는 처음으로 테니스 단식 대회에 출전했다. 작년부터 레슨을 꾸준히 받아 어느 정도는 되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대회장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깨달았다. 도박판에서 호구가 안 보이면 내가 호구라는 말이 있는데, 테니스 대회에서도 그 법칙은 정확히 적용된다. 결과는 2패, 예선 탈락. 두 게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비틀거릴 정도로 풀렸다. 레슨 때는 잘 들어가던 포핸드도 경기에서는 ‘아리랑 볼’이 되어 날아갔다. 승자들은 계속 경기를 이어가고 나는 가방을 싸서 코트를 나왔다.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많은 테니스 숙제를 가득 안고 돌아왔지만, 그래도 올해 목표가 생겼다. 예선 통과. 아니다… 최소 1승.

혹시 이 글을 읽는 선생님들 중 새로운 취미를 찾고 계신 분이 있다면, 테니스를 한번 시작해 보시라고 꼭 권하고 싶다. 요즘은 환경도 훨씬 좋아졌다. 과거에는 흙 코트가 대부분이라 비나 눈이 오면 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하드코트와 인조잔디 코트, 실내 코트까지 시설이 매우 좋아졌다. 특히 실내 코트가 많아져 처음 시작하는 ‘테린이’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준비물은 운동을 좋아하는 마음과 라켓 하나면 충분하다. 가능하면 친척 어르신 것이 아니라 새 라켓을 사시길 권한다. 예쁜 라켓이 너무 많다. 잘 관리된 코트에서 공을 칠 때 들리는 “팡팡” 하는 타구음만 들어도 병원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것이다. 혹시… 같이 공 치실 분 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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