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2 No.1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JAN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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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한 닥터가 되기 위하여


권우찬  |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작년 어느날엔가,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제 딸에게 나중에 무엇이 될 거냐는 질문에 의사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초 간 생각하더니, 아빠처럼 스페셜한 의사는 바쁘니까 엄마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덧붙이더군요 (아이의 엄마는 가정의학과를 나와 현재 건강검진센터에서 근무 중입니다). 잊을만하면 밤에 콜을 받아 뛰쳐나가고, 밤에 아이들이 자면 일이 남았다며 몇 시간 더 일하다 늦게 자는 아빠를 봤으니 충분히 현실적인 답변이다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런 ‘스페셜한 의사’가 되기까지 저에겐 참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과 4년차에 올라가기 전 전문 분야를 정할 때 순환기내과와 호흡기내과를 두고 고민했던 순간, 펠로우 2년차에 올라갈 때 인터벤션과 EP를 두고 고민했던 순간, 3년차를 앞두고 중환자의학과 수련을 할지 말지 고민했던 순간 등등. 저는 결국 관상동맥 인터벤션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되어 교수님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펠로우 1년차 막바지, 어시스트를 서며 결국 인터벤션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말을 한 제게 시술 중이던 최기홍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거저거 따져도 결국 좋아하는 거 해야돼.”

돌이켜보면 저는 순환기 중재시술 의사의 그 ‘스페셜함’에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저희 아버지가 중재시술 의사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늦은 시간 퇴근과 밤 중에, 혹은 휴일 중에 갑자기 전화를 받고 나갔다 오시는 걸 보면서 저게 의사의 삶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익혔던 탓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진로 선택은 다소 뻔한 감은 있었지만, 인터벤션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몇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그 어릴 적 보고 나름 정의 내린 ‘의사의 삶’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가장 부합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인턴 때 수술방에 들어가면 늘 실수 연발에 두 배는 더 힘들어하며 나는 시술이나 수술은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과 중 가장 수술과와 유사한 순환기내과를 해버렸죠. 그리고 응급이 별로 없고 막 커가는 필드라 전도가 유망하다던 EP 파트를 두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 길을 택했고요. 그렇게 손재주에 자신이 없고 소심했던 저인데도, 아파 죽어가던 사람을 바로 살려내는 게 의사라는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 있었나 봅니다 (물론 이 발언은 타 파트, 타과의 역할을 낮춰 보는 게 아니란 것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모든 게 되지 않듯, 어쨌든 배우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처음 교수님이 시술을 맡기시던 날, 아니 분명 와이어를 이쪽으로 돌리면 이쪽으로 돌고, 앞으로 밀면 앞으로 들어가는 원리인데 왜 그렇게 그 모든 것이 비결을 알려주지 않은 마법을 시도하는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펠로우 2년차 때 제게 시술 기회를 주셨던 이주명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역시 유전자로는 다 되는 게 아닌가보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그 발언을 기억 못하시는 게 분명하였던 이주명 교수님이 제게 “유전자는 다른가보다”라며 칭찬을 해 주시던 순간은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믿겨지지 않는 감격이었습니다. 수술 어시 하나 제대로 못 서던 제가 정말 그 마법의 비결을 익혔단 말인가요? 안타깝게도 그 후로 2년이 지난 지금도 유전자는 제대로 작동을 안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와이어와, guiding catheter를 빼먹는 제가, dissection과 branch jailing을 일으키는 제가, CTO fail case만 바쁘게 늘려가는 제가 뭐가 다른 게 있겠습니까. 결국 전 아직도 쥐꼬리만한 경험을 가지고 아주 평범한 속도로 학습 중인 초보자입니다. 이런 초보자를 믿고 자기 급소를 내어준 환자와 시술 고생하셨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보호자들에게 저 역시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 저는 같은 병원에서 저에게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시던 교수님이 병원을 옮기시면서 멘토를 잃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갑자기 막막해진 느낌에 당황하고, 늘어난 일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다 끝나면 부디 제가 생각하는 그 의사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길 빕니다. 이때까지 지나온 길을 토대로 보면, 어쨌든 한 가지 목표를 보고 묵묵히 한 걸음씩 떼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거리를 가게 되더군요. 이 심심한 글을 혹여나 제 후배 의사 분들이 읽게 된다면 뭔가 선배로서 덕담 같은 얘기라도 하나 남겨야 할 것 같은데, 아마 방금 말한 그 얘기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본인이 그리는 이상이 정해져있다면, 그걸 잊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다보면 어쨌든 어제보다, 작년보다는 더 가까워져 있을테고, 마법 같아 보이는 기술들이 당신 손에 붙을 것이라고. 이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만, 부디 여러분들의 앞날에 (그리고 제 앞날에(?!))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길 바라며 글을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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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저, 이종영 교수님, 이승재 교수님입니다. 최근 이종영 교수님은 평촌성심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고 강북삼성병원 Cathlab은 저와 이승재 교수님 둘이서 열심히 지켜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