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날엔가,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제 딸에게 나중에 무엇이 될 거냐는 질문에 의사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 초 간 생각하더니, 아빠처럼 스페셜한 의사는 바쁘니까 엄마 같은 의사가 되겠다고 덧붙이더군요 (아이의 엄마는 가정의학과를 나와 현재 건강검진센터에서 근무 중입니다). 잊을만하면 밤에 콜을 받아 뛰쳐나가고, 밤에 아이들이 자면 일이 남았다며 몇 시간 더 일하다 늦게 자는 아빠를 봤으니 충분히 현실적인 답변이다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런 ‘스페셜한 의사’가 되기까지 저에겐 참 고민과 선택의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과 4년차에 올라가기 전 전문 분야를 정할 때 순환기내과와 호흡기내과를 두고 고민했던 순간, 펠로우 2년차에 올라갈 때 인터벤션과 EP를 두고 고민했던 순간, 3년차를 앞두고 중환자의학과 수련을 할지 말지 고민했던 순간 등등. 저는 결국 관상동맥 인터벤션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되어 교수님 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펠로우 1년차 막바지, 어시스트를 서며 결국 인터벤션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말을 한 제게 시술 중이던 최기홍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거저거 따져도 결국 좋아하는 거 해야돼.”
돌이켜보면 저는 순환기 중재시술 의사의 그 ‘스페셜함’에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저희 아버지가 중재시술 의사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늦은 시간 퇴근과 밤 중에, 혹은 휴일 중에 갑자기 전화를 받고 나갔다 오시는 걸 보면서 저게 의사의 삶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익혔던 탓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 진로 선택은 다소 뻔한 감은 있었지만, 인터벤션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몇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그 어릴 적 보고 나름 정의 내린 ‘의사의 삶’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가장 부합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인턴 때 수술방에 들어가면 늘 실수 연발에 두 배는 더 힘들어하며 나는 시술이나 수술은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과 중 가장 수술과와 유사한 순환기내과를 해버렸죠. 그리고 응급이 별로 없고 막 커가는 필드라 전도가 유망하다던 EP 파트를 두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 길을 택했고요. 그렇게 손재주에 자신이 없고 소심했던 저인데도, 아파 죽어가던 사람을 바로 살려내는 게 의사라는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 있었나 봅니다 (물론 이 발언은 타 파트, 타과의 역할을 낮춰 보는 게 아니란 것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왼쪽부터 저, 이종영 교수님, 이승재 교수님입니다. 최근 이종영 교수님은 평촌성심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고 강북삼성병원 Cathlab은 저와 이승재 교수님 둘이서 열심히 지켜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