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가 동기들보다 발령도 늦었고 연수도 한참 늦게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不惑(불혹)의 나이가 넘어 그다지 설레지도 않고 크게 바라는 것 없이 약간은 귀찮은 마음으로 연수를 준비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한 번 해 보았던 J1 visa 신청. 다시해도 너~~무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연수의 목적은 딱 두 가지. 새로운 학문을 접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향후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회 … 가 아니라 대놓고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목적이었습니다. 궁금하시겠지만 이런 지면에 대놓고 밝힐 수는 없고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이른 자가 생각하는 바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떠나기 전 중재학회 선배님들과 뵐 때마다 연수 간다 말씀드리면 아주 공통적으로 선배님들께서는 연수를 추억하시면서 얼굴이 활짝 피셨고 그러면서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을 길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어디를 가봐야 하는지 …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저는 그 모습을 뵈면서 왠지 연수가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말씀해 주신대로 정말 후회없이 아낌없이 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였습니다.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UCSD) 대학 순환기내과 연구실을 미리 가 계셨던 박진주 교수의 도움을 받아 그 곳에 갈 수 있게 되었고 heart failure의 대가인 Barry Greenberg 교수님과 machine learning을 통한 예후 예측 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참 인품이 깊고 친절하신 교수님과 그 분의 환자이자 연구 동료인 참 특별하신 UCSD 물리학과 Avi Yagil 교수님과 1년간 미팅을 하면서 KAMIR 자료를 이용한 예후 예측 모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조만간 대단하지 않겠지만 작은 논문도 작성해 보려 합니다. 그렇게 제 연수의 해야 할 도리를 하고는 왔습니다.
샌디에고는 참 좋은 곳이더군요. 겨울에도 초록색 잔디가 깔려 있고 거의 매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며 제가 있는 동안 최저기온이 3-4도, 최고기온이 28도 였습니다. 해가 무지하게 뜨겁지만 그늘에서 덥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최고기온이 저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탁 트인 태평양 바다에서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 좋은 날씨를 만들어 냅니다. 땅도 어찌나 넓은 지 코스트코나 한인 마트 한 번 가려면 적어도 20km를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래도 교통 체증이 심하지 않아 15분도 안 걸려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유롭고 친절한 것 같아요. 그 곳에서 가족들과 평생 다시 가지기 어려운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너무 비싸기도 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들어 마음껏 즐기기 어려운 골프를 열심히 쳤습니다. 토리파인즈 골프 코스, 발보아 파크 골프 코스는 정말 좋은 골프장인데 1년이지만 저도 샌디에고 주민이어서 매우 싸게 즐길 수 있었고, JC golf 라는 퍼블릭 멤버쉽 골프장은 다양한 코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혜택은 한국인으로서 보면 너무 부러운 미국의 좋은 점인데 조금 안 좋은 시간에 가면 성인의 절반 이하 가격 또는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어린이들도 열심히 골프를 연습하고 즐길 수 있고 저희 아이들도 1년만에 같이 라운딩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늘어서 왔습니다. 물론 한국에 오자마자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 때문에 더 이상 할 수는 없었지만 함께 토리파인즈 골프장에서 석양을 보며 같이 운동했던 추억과 사진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진 1] 샌디에고의 겨울, 2월 어느 맑은 날에 토리파인즈 골프코스에서 바라보는 태평양, 그리고 저 멀리 라호야 비치.
가서 살아보니 막연하게 알았던 미국이라는 나라를 좀 더 제 수준에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너무너무 넓은 땅덩이는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다양한 일을 하면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정말 부자들이 많고 화려한 집들과 차, 최고급 상품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어떻게 어떻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싸고 경제적인 옵션들도 같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와 음식, 생활 방식이 혼재되어 있어 고정된 생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너무나 다양한 자연 환경과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웅장한 풍경들이 있어 가는 곳마다 새롭고 경이로워 보이는 여행지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좋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간단한 수술을 받을 일이 생겼는데 미국 대학에서 추천한 보험을 들었으니 잘 해결되겠지 라는 생각에 한국가서 해결하고 오라는 와이프의 권고를 안 듣고 미국에서 수술을 진행했는데… 보험 회사는 자세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보험 적용을 해주지 못하겠다 통보하고 병원에서는 제게 2만불을 청구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당 수술이 한 30-40만원 하려나요. 헐… 열심히 appeal을 해 보고 못하는 영어로 전화도 참 여러군데 해 보았는데 계속되는 전화 돌리기에 지치게 되고 제 메일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관련 부서의 장이 제게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있고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라는 답을 주더군요. 결국 아직도 appeal 진행중인 상태로 배째라하며 돈 안내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해결이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역시 의료는 한국입니다. 제발 현재 의료가 유지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노력해 봅시다.
한국에 돌아오는 날 새벽에 도착하여 그날 오후에 출근했습니다. 그 다음날 외래 진료를 보고 그 주말에 온콜 당직 중에 STEMI 시술도 했습니다. 정말 뿅 하는 순간에 미국의 생활 패턴과 기억은 사라지고 엄혹한 삶에 다시 내 던져 졌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있었음에 감사하고 그 기억에 행복합니다. 앞으로 떠나시게 되는 많은 분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며 혹시 그 전에 저를 뵙게 되면 저 또한 열을 내며 많은 얘기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앞으로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하며 제가 서 있는 이 땅도 참 아름답고 좋은 곳이기에 시간을 쪼개어 즐겨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